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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잉태와 탄생

잉태의 어려움


성경에서는 인간의 타락 이후에 임신의 고통이 주어졌다고 언급되며, 이는 단순히 출산 중에 경험하는 진통과는 다른 개념으로 이해된다. 

타락 이전에는 임신 자체가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니었으며, 타락 이후에야 임신과 관련된 고통이 주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출산의 고통은 아기를 세상에 내놓는 과정에서의 육체적 고통을 의미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임신의 고통은 타락의 결과로 주어진 전반적인 고난과 고통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성경에는 임신을 어려워한 인물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그리고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모두 임신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때에 맞춰 자녀를 잉태하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본인의 태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발동하는 타이밍이 일치하는 중에 임신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임신의 어려움은 단순히 신체적, 생리적인 문제로만 볼 수 없으며, 성경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해석된다. 

사라와 아브라함의 경우, 그들이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를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리브가 또한 오랜 기다림 끝에 쌍둥이를 얻게 되었고, 한나는 오랜 기도 끝에 사무엘을 얻게 된다. 

엘리사벳 역시 노년에 이르러 세례 요한을 잉태하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의 임신 과정은 하나님의 타이밍과 계획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성경에서 임신의 고통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을 넘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주어지는 시험과 인내, 그리고 궁극적인 축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임신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실현되며, 이는 인간의 신앙과 인내를 시험하고 그를 통해 더 큰 축복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드러낸다.


아기는 스스로 태어나기로 작정하였다


내가 상담한 어떤 청소년은 자신의 출생이 부모의 성적 욕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이러한 절망감은 그가 자신을 무의미한 결과물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허무한 절망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기의 탄생을 하나의 사고로, 또는 우연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과정들이 마치 무작위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인간의 탄생이 마치 자연 현상의 일부인 것처럼, 아무런 목적이나 의도 없이 단순히 일어나는 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탄생은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보다 깊은 의미와 의지를 담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주의 섭리와 개인의 의지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우리가 정자의 상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태어나고자 하는 본능적 의지와 생명력이 작용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의지가 나를 이 세상으로 인도했다.

따라서 젊은 남성이 느끼는 절망은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의 신비와 그 의미를 간과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경쟁하고 선택받은 존재들이다. 

우리의 탄생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며,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존재할 의미와 목적을 지닌 존재들이다. 

인간의 탄생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필연적이고도 의미 있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이미 정자의 상태에서부터 태어나고자 하는 의지, 즉 생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자궁으로 쏘아 올린 약 5억 개의 정자 중에서, 나는 가장 경쟁력 있는 정자로서 4억 9천만 개의 다른 정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하였고, 그 결과 가장 먼저 어머니의 난자에 도달해 그것을 수정시킬 수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경쟁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염색체의 조합조차도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떤 아이들은 남성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여성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생물학적 과정을 넘어서는 일이며, 그 안에는 깊은 의지와 선택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세포는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다. 

각각의 세포에는 고유한 정신과 영혼이 깃들어 있다. 

정자와 난자 세포가 만나 내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이 현실로 나타난 결과,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내가 이 세상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때의 선택과 의지의 결과이다.

따라서 인간의 탄생은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으로 축소될 수 없는, 깊은 의미와 목적을 지닌 사건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우리는 선택받은 자들이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의지와 정신에 의해 이끌린 결과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우연이나 사고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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