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앞마당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주먹만한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어쩔때는 메추리알만한 초록 열매들이 달렸는가 싶었고, 또 어떤날 보면 그새 초록도 빨강도 아닌 애매한 색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못 뒷덜미로 땀이 뚝 떨어지는 날이 되면 줄기마다 온통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익었다. 가장 맑고 붉은 토마토를 뚝 따서 대충 빨간 다라이에 담긴 지하수애 씻어낸뒤 한입 베어문다.
볼따구 사방으로 토마토 즙과 씨앗이 튀어나가고 새큼하고 단 토마토가 입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기왓집, 대청마루, 넓은 흙마당, 마굿간에는 송아지 한마리와 누렁소 두마리가 있고, 똥개는 마굿간 옆 개집에 묵여있다. 뒷산으로는 이름모를 새가 울고 탈탈탈 경운기 소리도 들려오는 여름이었다.
토마토를 먹다 꼭지와 테두리 살점들만 남기고 마당 앞에 있는 작은 텃밭에 툭 던진다. 손에는 토마토 꼭지 냄새가 물든다.
나는 그 꼭지 냄새를 참 좋아했다. 진한 풀냄새와 토마토의 달큰한 냄새가 살짝 섞여있는 여름냄새다. 이 향을 꼭 닮은 향수가 있다면 매일 뿌리고 다녔을텐데 아쉽다.
더이상 할머니 댁에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가시면서 빈집이 되어버렸고, 집은 마치 주인잃은 우산마냥 덩그러니 존재만 했다. '존재'라고는 하지만 온기가 하나도 없는, 무채색의 어떤 사물로 보인다. 사람이 다루는 모든 물건에는 온기가 들어있다는데 주인없는 집은 몇주만 지나도 모든 색과 온기를 잃어버린다.
앞마당 토마토들은 언제 썪어 없어졌는지 형채도 보이지 않고 앵두나무가 심어져있던 도랑은 밭둑으로 사라졌다.
나의 토마토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의 사랑스러운 토마토.나의 애틋한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