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뭔가요? 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밤,
살짝 코끝이 차가워지는 듯한 겨울 초입 아침이라고 말하고 싶다. 계절이 아닌,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좋아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공기 냄새를, 바람의 흐름을 좋아한다. 그래도 꼭 계절을 정확히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봄’이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으니 유독 싫은 계절이 있다. 여름이다.
여름에 태어난 사람이라 그런지 유독 더위를 많이 탄다.
한여름 길가에 파는 상추 잎사귀마냥 축 처져 버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즐기기가 쉽지 않다.
한숨 들이켜기도 전에 턱 하고 막히는 듯한 뜨거운 공기도, 에어컨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을 맞고 지나갈 때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릴 때도 ‘여름 진짜 싫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름날에는 병인이 되어, 앓아누워 지내는 날이 많다. 날이 쨍 하고 좋으면 햇볕에 타 버릴 것 같고 장마가 길어지면 온 몸으로 습기를 빨아들여서 앓아눕는다. 세 번의 큰 수술을 했던 시기도 여름이었다. 생일주간에는 감기몸살이 꼭 걸리거나 편도염으로 입원을 할 때도 있었다.
7월이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디 아프냐.’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안색마저 칙칙해진다.
나에게 여름은 아픔이고, 징크스며, 슬픔이기도 하다. 그래도 ‘싫다’는 말보다는 좋아해보고 싶다.
앞으로 여름을 얼마나 더 만날지 몰라서 이제는 다가오는 모든 계절을 특히 여름을 사랑해보고 싶다.
내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아직은 낯설고 생각도 못한 이별과 죽음을 겪으며 언젠가는 ‘끝’이있다는 것을 실감 했다.
그러니 내 삶에 여름이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니 80까지 산다고 치며 약 40번의 여름이 남은 것이다. 어쩌면 더 적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남은 여름을 싫어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다.
사랑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나의 여름을 청량하고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
나는 여름을 사랑하고 싶어서 ‘여름과 사랑에 빠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뭐든 사랑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올 여름은 내 노력이 깃든 여름이다.
여름과 사랑에 빠지기 하나.
초록으로 풍성해진 나무 찾기다. 회사 앞 버스 정류장은 벚꽃 가로수가 양옆으로 줄지어 심어져 있는데 봄이면 벚꽃터널이 되었다가 여름이면 초록 잎으로 가득 찬다.
외근을 갈 때 마다 정류장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면 사무실에서 파삭파삭하게 말라버린 내 감수성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외근을 자주 가는 동네 큰 나무도 나만의 ‘나무멍 스팟’이다.
아파트 3층 높이쯤 되는 데 직선으로 쭉 뻗은 기둥과 심슨의 마지 머리처럼 풍성한 잎이 매력적이다.
사철나무라 가을이던 겨울이던 늘 청량하다.
두 번째는 비 구경이다. 오랫동안 내리는 장마가 힘들기는 하지만 창 너머 내리는 비 구경도 재미있다.
통 유리창이 매력적인 카페에서라면 ‘비멍’도 좋다.
우리 집은 사방이 통 유리창이라 여름에 쪄죽긴 하지만 비가내릴 때 ‘비멍’하기 딱 좋은 집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유자 하이볼이 맛있는 계절이라는 것.
몇 년 전 제주도 여행에서 처음 마셔본 유자 사케로 만든 하이볼은 나의 최애 에피타이저 술이 됐다.
여름이 오기 시작하면 세병씩 냉장고에 쟁여놓고 매일 한잔 씩 마시는 술이다.
봄에도 가을에도 마셔봤지만 유독 여름날에 마셔야 맛있다.
토닉워터에 유자 사케를 적절히 따르고 얼음을 양껏 넣어 레몬 한 조각까지 탁 올려놓으면 어느 bar가 부럽지 않다.
네 번째는 홀라당 벗고 잘 수 있다.
난데없이 망측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여자들은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브라자를 벗어 던지지 않나? 더운 여름에 브라자는 가슴에 패딩을 덧댄 느낌이랄까.
가슴 이게 뭐라고 브라자를 꼭 해야 하나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퇴근 후 가장 먼저 브라자 벗어던지고 샤워 후 가장 얇은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잘 때는 팬티만 입고 얇은 홑이불을 덮고 선풍기를 켜둔다. 아, 지금 이 순간 나는 우리 집 고양이 가슴 털처럼 가볍다.
이제 본격 여름이 시작됐으니, ‘여름과 사랑에 빠지기’ 프로젝트는 계속 될 것이다.
‘싫다’는 것보다는 그럼에도 ‘좋아해’보자. 그 어떤 것이 무해한 거라면 그것만이 가지는 사랑스러움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고양이가 싫다면 고양이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스러움을, 누군가 싫다면 그 누군가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나처럼 어떤 계절이 싫다면 그것만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찾아보자.
그리고 내 자신이 싫다면 나를 더 사랑해주자. 여름도 사랑해주려고 하는데 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