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열정
13. 일 안 하고 돈 벌고 싶다.
패기 넘치는 20대 중반. 사업을 시작했던 적이 있었다. 오픈 3개월 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였고, 1년 후 에는 제법 안정되어 그 나이 또래들에 비해 꽤 큰돈을 만졌다. 주변 사람들의 묵언의 지지와, 시대가 때마침 딱 맞아떨어지던 나의 운빨은 무시한 채, 모두 나의 노력과 열정 덕분이라며 기세 등등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패하면 부조리한 사회 탓이고, 성공하면 온전히 나의 뜨거운 열정 탓이었다. 나는 그 시절 그러한 나의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열정 페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열정(熱情)’이라는 한자어와, pay라는 영문을 합치어 만들어진 단어인데, 요즘에는 국어사전에도 기재될 정도로 누구나 만연하게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막상 고용주, 또는 사업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나는 그 ‘열정’ 이란 단어를 쉽사리 이용하려 들곤 하였다.
피고용주들은 커뮤니티에서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든 종종 ‘월루한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쓰곤 하였는데, 이 ‘월루’ 라는 단어는 ‘월급을 루팡 한다’의 줄임말이다. 자신이 회사에 고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대충 때우며 고용주의 돈을 받아가겠다는 의미로 쓰인다. ‘월루’라는 단어를 쓰는 피고용주들은 대게 그 단어를 자랑스레 여기곤 했다.
‘대충 일해도 돈 나오는 회사, 주는 만큼만 일하자. 시키는 일 이상은 하지 않는 것, 나는 그만큼 효율적이며 고급인력이기에 부조리한 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월루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우리는 멋지고 자유롭고, 또는 정당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허나, 이 직장인들은 자영업자, 또는 고용주가 월루하는 모습은 절대 보지 못하더랬다.
민주주의인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자들은, 무조건적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들어주어야 하였으며, 갑과 을중 을이 되기 일쑤였다.
배달음식을 한 예로 들어보자. 대충 월루하며 쉽게 돈 벌고 싶었던 떡볶이집 사장은 적당한 재료를 사용하며, 오픈 시간도 어기기 일쑤였고 그다지 친절하진 않았다. 이에, 불만족한 소비자의 갑질이 시작된다. 자영업자는 절대적으로 게으를 수 없다는 전제가 깔린 듯, 소비자는 월루하는 자영업자를 절대 두고만 볼 수 없다. 조만간 그 떡볶이 가게는 별점이 테러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네 떡볶이집 차고 넘치는데, 서비스도 안 주고 배달도 늦고. 사장 돈 벌기 싫은가 봄’
하고 소비자들은 정의의 사도가 된 것인 마냥 심판을 시작한다.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이들이 도태되는 것은 시장 경제 중 어쩔 수 없는 이치이니 자영업자는 그렇다 치자.
기업 ceo들은 어떻고 말이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기업은 절대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면 안 된다.
구멍가게가 상회가 되고, 상회가 중소기업이 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된. 실은 기업 또한 이윤을 추구한 장사치에 불과한 것일 뿐인데. 소비자들은 기업이 가격을 100원이라도 올릴 때면, 혹은 재무부실로 인해서 구조조정을 발표할 때면, 대뜸 기업의 윤리를 들이밀곤 한다. 이렇듯 소비자들에게 기업은 그저 아무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자원봉사단체쯤 돼야지만 만족한 듯하다.
아무래도 소비자들에게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열정 페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인 것 같다. 그 열정 페이가 그렇게도 부조리하고 답답한 사회 시스템 같지만, 실은 나조차도 그 누군가에게 열정 페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었으니 웃기지 않은가.
예수의 한마디가 떠오르는 밤이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