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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 Jan 31. 2022

20. 그게 사과하는 태도니?

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핑계



20. 그게 사과하는 태도니?     


우리는 한 번씩 나의 논리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음에 희열감을 느끼곤 한다.


‘블랙컨슈머’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악성을 뜻하는 블랙(black)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의 합성 신조어로, 악성민원을 고의적,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를 뜻하는 말인데, 확대해 요즘 젊은 소비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성향을 보인다. 

자신이 지불한 금액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의 완벽하고 일목요연한 논리로 상대방을 무릎 꿇게 해야만 하는 부류인데, 필자 또한 사업을 할 때 많이 만나보았다. 


나는 온라인 유통업을 시작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논리로 무장된 소비자들을 마주할 때면, 몇 번이고 무릎 꿇어 그들에게 사죄하곤 했다. 

한 소비자는 몇백만 원 치의 상품을 주문한 후, 이틀 뒤 도로 반품하였다. 아무 죄 없는 나는 그렇게 몇백만 원 치의 악성 재고를 끌어안아야 했다. 

며칠 뒤, 실상을 알고 보니 그 소비자는 그 상품들로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고선, 전량 반품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왕복 배송료 5.000원에 무료 렌탈샵을 자처하였다. 

한날은, 상품이 난도질되어 자사에 도착하였길래 제대로 검수하지 못한 나의 탓으로 돌려, 무료 환불을 진행해 주었다. 

후에 또 cctv를 살펴보니, 그 상품은 멀쩡한 상품이었다. 소비자는 2,500원의 자부담 배송료가 아까워 상품에 일부러 하자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뭐, 이렇다 할 예시들은 정말로 불량한 소비자들이라 치고, 우리는 나의 돈이 단 1원이라도 불합리하게 쓰인다면, 그것을 참지 못한 적이 많을 터였다. 

큰 마음먹고 호텔 스위트룸에 호캉스를 갔는데, 내가 지불한 금액보다 서비스가 만족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인당 50만 원짜리 미슐랭 3 스타를 갔는데 내 입맛 대비 별로였다 거나 하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1원은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제나 을의 입장이었던 나는, cs를 도맡아 연신 소비자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는데, 논리적인 소비자들에게 나의 ‘해명’은 ‘핑계’에 불과했다. 

나의 논리는 그렇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빈약했다. 

항상 나의 우위에 있는 완벽한 논리의 소비자들은 결국은 승리하여 자신이 원하던 바를 기필코 이루곤 하였다. 



이렇듯, 비단 기브 앤 테이크 관계를 넘어, 나는 일반적인 관계에서 또한 상대방과의 불화에 있어 사과를 요구받은 적이 많았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나에게 육하원칙에 따라 왜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해 해명하길 요구했다.      


해명(解明)

[명사] 까닭이나 내용을 풀어서 밝힘.     


나는 나의 빈약한 논리를 조합해, 상대방에게 ‘이러해서 저리 되었으며 굉장히 미안하다.’라고 사과하곤 하였는데, 똑같은 내용 일지언정 귀 열린 이들에게는 그것이 ‘설명(說明)’이 되었고, 귀닫힌 이들에게는 그것이 ‘변명(辨明)’이 되었다. 

아무리 구구절절 시간 순서에 따라 나의 잘못함의 원인과 반성을 나열해보아도, 그것은 상대방에게 핑계에 불과했던 적이 많아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또 이렇게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해명, 설명, 변명 세 쌍둥이 ‘명(明)’자 돌림에게 놀아나곤 하였다. 

나 역시 생에 있어 한번은 누군가에게 블랙컨슈머였을 것이고,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핑계만 늘여놓는 논리가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우리는 지금 사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귀를, 혹은 마음을 열어두고 있는 게 맞긴 한가? 정답은 당신이 이미 정해져 놓지 않았는가. 우리는 해명을 요구하기 전에, 일단 귀를 열어보자.

유치한 작가의 핑계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닿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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