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공 Jan 31. 2022

19. 설렘의 시간

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설레임



19. 설렘의 시간     

나와 당신이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그것을 한 단어로 정립해 보려 한다.


‘희망 ≠ 설렘’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내일 같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면서 잠자리에 들곤 한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내일 회사에서 쌓여있는 업무를 비관적으로 상상할지언정, 내일 소풍놀이에 들떠 머리맡의 과자가 불룩한 가방을 보고 있는 아이의 낙관적 상상일지언정, 그 형태가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가곤 한다. 

사람들은 대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절망, 혹은 실망이라는 단어와 반대 선상에 놓곤 하였는데, 실은 희망, 절망, 실망은 모두 한 갈래 길을 걷고 있는 단어였다.


앞서 나열한 세 단어는 모두 ‘상상’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파생된 소분류였다. 

우리는 상상이라는 단어를 본인이 어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희망, 절망, 실망으로 구분 지어 말할 수 있다.

비슷한 단어로는 ‘설렘’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나는 이러한 밑받침이 들어간 단어들이 너무나도 귀엽게 느껴지곤 했다. 

몽실몽실, 둥실둥실, 콩닥콩닥, 팔랑팔랑, 별빛, 과같이 밑받침이 들어간 국어 낱말들은 무언가 부드러워 보였으며, 설렘이라는 단어 또한 달콤한 초콜릿 같기도 하고, 두근두근 거리는 나의 심장을 표현하는 듯한 역동적인 단어였다. 

나는 그리하여, 이 설렘이란 단어(혹은 설레임)를 높게 평가하는 바이다. 나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지향적인 단어가 아닌, 나의 현재 상태를 표현해 주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희망(希望), 절망(絕望), 실망(失望)은 모두 ‘바랄 망(望)’ 자라는 돌림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의 염원이 한 방울 첨가된 ‘망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설렘 이란 단어는, 현재 있는 나 자체를 표현해 주기 충분했다.     


설렘 (설레임)

[명사]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림. 또는 그런 느낌.     


지금 초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망’ 자 돌림보다 설렘이라는 단어가 알맞은 듯하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 설레며 잠자리에 들곤 한다. 

내일은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으며 실망 또한 없다.     

 

우리는 이렇게 상상 또는 망상하며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귀하게 여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미래를 앞서 보는 예언자라도 된 듯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지수 같은 그 미래에 나의 삶을 허비하며, 시간을 소모하곤 했다. 우리는 나의 ‘시간’을 꽤나 소중하게 여기곤 한다.


어린 왕자 속 사막여우가 긴 시간을 소요해 길들여지는 듯, 우리는 아무것 이되었건 어떠한 사물에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면 그것을 보상받고 싶어 하곤 했다. 

내가 애써 노력한 시간들이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좌절하고, 긴 시간 상대방에게 공을 들였는데, 상대방의 싸늘한 시선을 볼 때면 내가 투자한 소중한 시간들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실은 상상이라는 낱말과도 비슷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도 말이다.      


작가는 조금 덜렁이고, 꼼꼼하지 못한 스타일인데, 나의 엄마는 요리 같은 어려운 분야는 일찌감치 포기하셨고, 청소기 돌리기라던가, 설거지, 빨래 개기 등의 단순노동을 한 번씩 내게 지시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날쌔게 후딱후딱 엄마의 미션들을 수행하였는데,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을 보고서 엄마는 내게 ‘뭐 그렇게 대충 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이것은 사회생활에서도 일례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3시간 만에 작성한 보고서 보다야, 일주일에 걸려 작성된 보고서가 나름 더 정성이 들어간 듯 상사는 평가해주었다. 


하여튼 다시 돌아가, 나는 제 나름 열심히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는 상황이 반복되어, 잔꾀가 생기곤 하였는데, 그것은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 


청소기를 돌릴 때에면, 빨리 미션을 클리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윙윙거리는 청소기를 켜놓고 괜히 허공에 삽질을 한다거나, 설거지를 할 때에도 그것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 정도 더 더 물을 틀어놓는다거나, 빨래를 다 개고 나서라도 다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멍하니 티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되었다. 이렇게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한 나에게 엄마는   

  

“잘했네”

     

하고 칭찬을 해주시곤 했다. 엄마 마음에 들었으면 다행이다. 엄마는 상상이란 시간 속에서 나의 꼼꼼함에 감동을 받은 듯하다. 

이렇게, 나는 엄마와 ‘시간’이라는 얄궂은 단어 속에서 합의점을 맞추어 가곤 했다. 엄마의 소중한 시간을 조금 더 존중해 드리려 한다.

오늘도 청소기 돌리기라는 미션을 부여받은 나는 설레일 뿐이다.




이전 18화 18. 내가 너를 이끌어 줄지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