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 대신 #11

따뜻한 말이 언젠가부터 나를 조용히 누르기 시작했다

by 공인멘토
ChatGPT Image 2025년 6월 13일 오전 04_26_12.png

오디오북 입니다 https://youtu.be/868hB73y0To


“정이 있으니까 그런 거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참 따뜻했습니다.

아, 나를 챙기려는 마음이구나.

괜히 혼자 뿌듯했고, 그래도 이 낯선 회사 안에

내 편이 하나쯤은 생긴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 말에 쉽게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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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상했어요.

그 말은 자꾸만 내가 불편해질 때 등장했습니다.


일이 아닌 개인적인 부탁.

사적인 감정을 묵묵히 들어주는 역할.

주말이나 퇴근 이후에도 이어지는 요청들.


> “정이 있으니까 말하는 거야.”

“너라서 말하는 거야.”

“딴 사람한텐 이런 얘기 못 해.”



어느새 그 말은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의 족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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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거절했을 땐 이런 말이 돌아왔습니다.


> “아, 괜히 부탁했네. 너한텐 아직 정이 없나 보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정이 없다’는 말 한마디에

내가 냉정한 사람, 선을 긋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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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 말이, 나를 위한 걸까?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그 ‘정’이라는 말이

언제나 내가 무언가를 감당해야 할 때만 나왔다는 것을요.


따뜻한 말처럼 보였지만,

그 말은 나의 감정을 설득하고,

나의 시간을 데려가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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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라는 말의 오래된 풍경


예전엔 그랬죠.

정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도도, 시스템도 없던 때.

서로를 믿고 살아야 했기에

정은 관계를 잇는 필수적인 끈이었겠죠.


> “정 붙이고 살아야지.”

“정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



그건 살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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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우린 각자의 역할이 있고, 경계가 있고,

존중과 분리가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과거의 정서를 지금의 틀로 끌고 오면,

그건 때때로

서로를 묶는 말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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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빌미로 선을 넘는 말


어느 날 점심시간,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선배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 “이거 좀 도와줘.

너한테 정이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 말에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 진심일까.

아니면 내가 거절하지 못할 걸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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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가온과의 대화


그날 상담실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가온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 “정이라는 건, 참 미묘해요.

잘 쓰면 마음이고,

잘못 쓰면… 경계를 넘는 무기가 되죠.”



그 말에, 숨이 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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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은 덧붙였습니다.


> “요즘 시대에서 정을 이유로 부탁하는 건,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내 편의를 감정적으로 포장하는 걸 수도 있어요.”



> “그 부탁, 정말 정이 있어서 한 걸까요?

아니면, 당신이 거절하지 못할 걸 알아서 한 건 아닐까요?”



가슴 깊은 곳에서 철렁, 소리가 났습니다.

정확히 그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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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부탁받기 쉬운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도 단호하게 거절해 본 적 없는 사람


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정이란 이름으로 피로해져도, 웃으며 넘기던 사람


그러다 어느새

내 시간은 침범당하고

내 감정은 무시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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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나만 일방적으로 받아주는 관계였고,

말은 따뜻했지만 실은 서서히 나를 갉아먹는 관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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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정은, 이런 게 아닐까요


가온이 말했습니다.


> “진짜 정은요,

내가 편해서 부탁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힘들지 않을까 먼저 묻는 것이에요.”



그 말은,

내게 ‘정’이라는 말을 다시 바라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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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부탁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이렇게 말해봤습니다.


“지금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이번엔 힘들지만, 다음에 도와드릴게요.”


“오늘은 제 시간이 좀 필요해요.”



놀랍게도,

상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전혀 어색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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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나를 지키는 언어였습니다


나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거절은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것.


정이라는 말은

부드럽지만, 조심히 다뤄야 할 감정의 그릇입니다.


이제 나는,

누군가가 “정이 있으니까…”라고 말할 때,

조용히 내 마음부터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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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누군가를 묶기 위한 말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주는 언어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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