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족이잖아”라는 말이 불편해진 순간
오디오북 입니다 https://youtu.be/o-QLGMwRd64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 어색한 사람들,
그리고 낯선 공간에서 누군가가 내게 말했죠.
> “우리 팀은 가족 같잖아.”
그 말은,
어딘가에 내 편이 있다는 위안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이곳에서 자리 잡고, 함께 웃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그 말이 책임의 이름으로 내 자유를 갉아먹기 시작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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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우리 식구니까 믿고 맡길게.”
“회식 꼭 와야 해. 우린 진짜 가족이야.”
“주말에도 나와줄 수 있지? 가족은 같이 버티는 거니까.”
“몸이 좀 안 좋아도, 지금은 같이 견뎌야지. 우리 모두 힘든 거 알잖아.”
언제부터인가,
‘가족’이라는 단어는
늘 누군가의 부탁,
혹은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순간에만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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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나를 보호한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 말이 내게 따뜻하게 다가왔던 순간이 있었던가.
내가 지치고, 힘들다고 말했을 때
그 단어는 나를 감싸주었는가.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늘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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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
한 번쯤 “오늘은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려 할 때면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너만 가족 아니야?”
“우리 다 같이 힘든데, 네가 빠지면 어쩌라고?”
그 말 앞에서 나는
내 감정을 내려두고
다시 웃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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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상담실에서
나는 털어놓았습니다.
“그냥… 다들 그러니까요.
우리 팀은 원래 그래요.
나만 빠지면 안 되는 분위기라서…”
가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 “그 ‘가족’이라는 말,
당신을 진짜 보호해준 적이 있었나요?”
> “그건 당신의 감정을 이해한 건가요,
아니면 복종을 유도한 건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질문은,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복종의 언어를
낱낱이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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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족은,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는
‘괜찮아,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내가 예민한가 봐.’
‘내가 참으면 되지.’
라고 말하며,
내 감정을 지워왔습니다.
그 모든 말들 속에,
나는 나를 이해하지 않는 채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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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은 신호입니다
억울함도, 피로함도,
사소한 짜증도.
그건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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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떠나지 않아도,
경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하는 건,
회사를 그만두는 용기보다
‘거절할 수 있는 나’로 살아보는 연습인지도 모릅니다.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지킬 수 있는 방법,
그게 진짜 건강한 거리이자,
지속 가능한 연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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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은 말했습니다.
> “관계는 선택이어야 해요.
선택이 없는 관계는, 따뜻함이 아니라 통제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누군가 “우린 가족이잖아”라고 말할 때,
한 발 물러서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말은 지금, 나를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무너뜨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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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지금 그 ‘애매한 말들’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여백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예민한 게 아니라, 깨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