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 대신 #14

가족이라는 말이

by 공인멘토
ChatGPT Image 2025년 6월 13일 오후 12_08_47.png

오디오북 입니다 https://youtu.be/aVbVwTNGrwk


왜 이렇게 숨 막히게 느껴졌을까


“이번 주 금요일 회식 있어요.
7시까지 정모네 감자탕.
전원 참석입니다.
우린 가족이고, 한 식구잖아요.”


메시지를 보는 순간,
나는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익숙한 말인데,
왜 이렇게 숨이 턱 막히는 걸까.


"가족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누군가 생일이면 다 함께 케이크 이모티콘을 보내주고,
야근하는 동료에겐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말하곤 했다.


“가족이니까.”
“한 식구니까 챙겨야지.”


처음엔 고마웠다.
소속감을 느꼈고,
따뜻함도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가족’이라는 말이 거절을 막을 때


“회식 빠지면 안 되지, 가족인데.”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하지 않겠어?”


내 감정, 내 사정은
“가족이니까”라는 단어 앞에서
늘 뒷순위였다.


어쩌면 그 말이
가장 교묘하게 나를 침묵하게 만든 건 아닐까.


“저… 회식, 싫어요.”


며칠 전, 상담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회식이 싫어요.
근데 말하면 분위기 깬다고 할까 봐 무서워요.”


가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어요.
우리는 너무 오래 착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죠.
모두 함께, 다 같이,라는 말속에서
정작 내 감정은 점점 지워졌고요.”


“거절은 단절이 아니에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는 말이죠.”


떨리는 손으로,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회식 참석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자를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죄송합니다.
금요일 개인 일정으로 참석이 어렵습니다.”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팀장이 실망할까?’
‘뒤에서 뭐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더는 내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전송.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답장은 짧았다.


“그래요~ 다음에 같이해요.”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팀원이었고,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하며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는지를.


“가족이니까”라는 말에 가려졌던 내 마음


어릴 적,
아버지는 자주 말했다.


“가족끼리는 말 안 해도 알아.”
“눈치껏 움직여.”


그때는 그게 미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커서 보니,
그건 감정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침묵의 문화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문화를 회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오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야 좋은 사람?


회식에 꼭 참석하고,
불편한 말은 삼키고,
사적인 부탁도 “괜찮아요” 하며 웃던 나.


그게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남은 건 무기력한 껍데기뿐이었다.


“경계는 나를 지키는 일이에요.”


가온은 말했다.


“경계는 이기적인 게 아니에요.
그건 나를 지키는 선이에요.
그리고 그 선이 있을 때,
관계는 오래갑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지금까지
너무 오래 나를 방치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작은 변화, 단단한 나


그날 이후
나는 하나씩 실천해 보기로 했다.


퇴근 후에는 회사 톡 알림 꺼두기

주말 약속보다 나의 휴식 먼저 챙기기

사적인 부탁에는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해보기


처음엔 떨렸다.
하지만 한 번 해보니 알게 됐다.


내가 나를 지켜줄 때,
진짜 관계는 시작된다는 걸.


“말할 수 있는 사이”가 가족이다


가온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아니에요.
말할 수 있는 사이, 말해도 괜찮은 사이예요.
그리고 그 말이 명령이 아니라 ‘의논’이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어요.”


오늘의 질문


“이번 주엔 어떤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내 감정을 존중하는 선택은 무엇일까?”
“지금, 나는 누구의 리듬으로 살고 있는가?”


오늘도 나에게 이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러 간다.


이 글은 '직장 내 감정노동', '가족 같은 회사 문화', '경계 설정', '거절의 용기'에 공감하는 이들을 위해 씁니다.


감정노동이 일상이 된 사람들,
‘좋은 사람’이 되느라 지친 당신에게
이 글이 작은 숨구멍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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