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말이
오디오북 입니다 https://youtu.be/aVbVwTNGrwk
왜 이렇게 숨 막히게 느껴졌을까
“이번 주 금요일 회식 있어요.
7시까지 정모네 감자탕.
전원 참석입니다.
우린 가족이고, 한 식구잖아요.”
메시지를 보는 순간,
나는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익숙한 말인데,
왜 이렇게 숨이 턱 막히는 걸까.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누군가 생일이면 다 함께 케이크 이모티콘을 보내주고,
야근하는 동료에겐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말하곤 했다.
“가족이니까.”
“한 식구니까 챙겨야지.”
처음엔 고마웠다.
소속감을 느꼈고,
따뜻함도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회식 빠지면 안 되지, 가족인데.”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하지 않겠어?”
내 감정, 내 사정은
“가족이니까”라는 단어 앞에서
늘 뒷순위였다.
어쩌면 그 말이
가장 교묘하게 나를 침묵하게 만든 건 아닐까.
며칠 전, 상담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회식이 싫어요.
근데 말하면 분위기 깬다고 할까 봐 무서워요.”
가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어요.
우리는 너무 오래 착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죠.
모두 함께, 다 같이,라는 말속에서
정작 내 감정은 점점 지워졌고요.”
“거절은 단절이 아니에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는 말이죠.”
그날 나는 처음으로
회식 참석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자를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죄송합니다.
금요일 개인 일정으로 참석이 어렵습니다.”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팀장이 실망할까?’
‘뒤에서 뭐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더는 내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전송.
답장은 짧았다.
“그래요~ 다음에 같이해요.”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팀원이었고,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하며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는지를.
어릴 적,
아버지는 자주 말했다.
“가족끼리는 말 안 해도 알아.”
“눈치껏 움직여.”
그때는 그게 미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커서 보니,
그건 감정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침묵의 문화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문화를 회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오고 있었다.
회식에 꼭 참석하고,
불편한 말은 삼키고,
사적인 부탁도 “괜찮아요” 하며 웃던 나.
그게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남은 건 무기력한 껍데기뿐이었다.
가온은 말했다.
“경계는 이기적인 게 아니에요.
그건 나를 지키는 선이에요.
그리고 그 선이 있을 때,
관계는 오래갑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지금까지
너무 오래 나를 방치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날 이후
나는 하나씩 실천해 보기로 했다.
퇴근 후에는 회사 톡 알림 꺼두기
주말 약속보다 나의 휴식 먼저 챙기기
사적인 부탁에는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해보기
처음엔 떨렸다.
하지만 한 번 해보니 알게 됐다.
내가 나를 지켜줄 때,
진짜 관계는 시작된다는 걸.
가온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아니에요.
말할 수 있는 사이, 말해도 괜찮은 사이예요.
그리고 그 말이 명령이 아니라 ‘의논’이 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어요.”
“이번 주엔 어떤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내 감정을 존중하는 선택은 무엇일까?”
“지금, 나는 누구의 리듬으로 살고 있는가?”
오늘도 나에게 이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러 간다.
이 글은 '직장 내 감정노동', '가족 같은 회사 문화', '경계 설정', '거절의 용기'에 공감하는 이들을 위해 씁니다.
감정노동이 일상이 된 사람들,
‘좋은 사람’이 되느라 지친 당신에게
이 글이 작은 숨구멍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