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먹는 걸로 위로했다
– 배가 고픈 건지, 마음이 허기진 건지
“오늘은 좀 먹어도 돼.”
이 말은
하루의 끝에서 나도 모르게 내뱉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위로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정말 먹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오늘 하루를 간신히 버텨낸 나에게
스스로 내린 어설픈 보상이었을까.
보고서를 마감하고,
상사의 무표정한 말 한마디에 온몸이 얼어붙었던 하루.
점심도 제때 챙기지 못한 채
컵라면으로 겨우 배를 달랜 위장이
이제 와서 소리를 낸다.
‘이대로 그냥 자기는 억울하다’는
이상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래서 익숙한 어플을 연다.
치킨, 피자, 떡볶이, 맥주…
자주 가던 가게를 누르고,
‘뼈 vs 순살’을 잠시 고민한다.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
높은 배달비.
그래도 오늘만큼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결제 버튼을 누른다.
혼자 있는 소리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둠보다 먼저 맞이하는 건 정적이다.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음악을 켜고, TV를 튼다.
조용함을 감추기 위해
소리들을 겹겹이 덧대는 밤.
탁자 위에 음식을 펼치고,
나는 먹기 시작한다.
천천히, 혹은 너무 빠르게.
닭 한 조각이 입안에서 퍼지고,
탄산이 혀를 톡 쏘고,
짠맛이 피로한 위장을 덮는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안 해도 되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저 씹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금세 포만감이 찾아오고,
함께 오는 건 묘한 허탈함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먹었지?”
“운동해야 하는데, 또 망쳤네…”
거울을 보면 부은 얼굴이 보이고,
식탁 위에는 비워진 캔맥주가 남아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문,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이 말은 다짐이 아니라,
거의 의식에 가깝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나의 루프가 시작된다.
자기비난 → 다짐 → 실패 → 후회 → 다시 자기비난.
가온은 그런 악순환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리고 말하지 않고,
질문한다.
“그 음식은 당신을 위로했나요,
아니면 더 외롭게 만들었나요?”
이건 단순히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음식을 왜 먹었는지,
그 순간의 마음은 어땠는지를 묻는 것.
배고픔은 몸의 신호고,
허기는 마음의 신호다.
마음이 공허할 땐 단맛을 찾고,
감정이 복잡할 땐 매운맛을 찾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나는 식욕을 조절하지 못해요.”
하지만 가온은 말한다.
“조절되지 않은 건 식욕이 아니라,
방치된 감정일지도 몰라요.”
음식은
가장 쉽게 나를 달래는 방법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정말 먹고 싶었던 건 치킨이었나요,
아니면 오늘 하루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나요?”
“정말 배가 고팠던 건가요,
아니면 그저 누군가와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가요?”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는
그 행동을 자책하기보다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왜 먹었을까.
그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
그 위로는 정말 나에게 따뜻했을까.
“지금 당신이 먹는 음식보다 더 중요한 건,
왜 그걸 먹게 되었는지
당신 스스로에게 묻는 일입니다.”
“오늘도 또 먹었다고 괴로워하지 마세요.
다만, 그 안에 있는 당신의 감정을
이제는 마주해보면 됩니다.”
� 오늘 당신은,
배가 고파서 먹었나요?
아니면…
그저 마음이 허전해서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