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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고, 그들은 기다린다

by 미려

따르르릉 오늘도 나는 내 자리 오른쪽에 자리잡은 하얀색 사무실 전화기를 들어본다.

익숙한 전화번호를 누르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ooo 과장입니다' 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말한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익숙한 첫인사와 함께 나의 요구사항이 시작된다.

왜냐면 우리는 요구하는자와 요구당하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연결된 일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일적으로 만난 관계에서는 일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제일 좋다.

그사람의 개인적인 성향, 그리고 인간미가 아무리 좋아도 일을 못하면 꽝이다.

"○○○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결과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관계를 맺은 수화기 넘어의 그사람과도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내가 그동안 세월이 오래되었기에 목소리를 들으면 누구인지 서로는 안다.


컴퓨터 앞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나는 멀티플레이어적 관점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는 일이 이것도, 저것도 다양하게 생각해야한다.

오늘은 저것을 하기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요구하는 전화를 하고 전화를 끊고 반나절을 기다려본다.


컴퓨터 화면을 몇번이나 F5 새로고침을 누르고 또 눌러도 화면은 그대로다.

시간이 한참을 흘렀기에 나는 그렇게 익숙한 전화번호를 누르고 익숙하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대답이 들려온다.

주절주절 내려가는 나의 요구사항에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다음주에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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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말문이 막히고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요구하는 사람과 요구당하는 사람이 해야할 각각의 일해서 요구당하는 사람이 해야할일을

왜?

요구하는 사람이 또 물어봐야 수동적으로 일이 진행이 될까?

스스로 판단해서 역으로 스케줄을 계산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는가?


처음하는 일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수동적이며 매번 같은 요구를 해야 움직일까?

일에 대해 수동적이라는 말은 자신이 전문가 스럽지 못하다는 말일지도

답답한 마음은 나의 목소리 톤을 바뀌게 한다.

아니 바뀌게 했다. 답답한 마음은 상냥하지 못한 나의 목소리는 수화기 저너머로 흘러 나갔을것이다.


그렇게 흘러간 목소리는 상대의 귀에 그리고 상대의 머리에

그리고 상대의 마음은 상대의 입으로 나오는 말로 표현되었을까?

답답함이 나의 목소리 톤을 바꾸게 한다.

아니, 바뀌게 해버렸다.

"이건 미리 체크했어야 하는 부분 아닌가요?"

"왜 요청할 때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죠?"


주절거리는 나의 말을 자를려고 하는 상대의 상냥하지 못한 말과 목소리는

나의 수화기로 들어와 나의 귀 나의 머리 나의 가슴 나의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한다.

"이사님께 전화하라고 하세요?"라는 말을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우리의 전화 통화는 마무리 되었다.

누군가의 잘못인가? 일을 능동적으로 처리 못하는 상대?

아니면 내가 먼저 예상한 일정보다 더 빠리 체크를 했어야 하는 나의 모습?

과연 그 물음표의 정답은 뭘까?


나는 여전히 고민한다.


이 관계는 유지해야 하는 관계일까? 아니면, 정리해야 할 관계일까?

다음 주가 되면, 결국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요구하는 사람이고, 그들은 여전히 요구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나는 똑같이 전화를 걸어 똑같은 말을 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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