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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Sep 11. 2024

가을의 연주

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늘 다니던 숲속 길을 산책하다 보면 버릇처럼 장소를 물색하곤 한다. 책 한 권 들고, 새소리를 음악 삼아 한나절 쉴 수 있는 곳. 혼자여도 좋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좋다. 도시락 싸 들고 아예 하루 종일 있을 만한 곳이라면 더없이 좋다. 굳이 고요하고 적막한 곳을 찾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자연의 일부이니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지나가던 사람이 내가 읽던 책 제목을 보고 달려와서는 “나도 그 책을 읽었는데, 재밌나요?”하고 말을 붙여도 반갑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물 한 모금을 청하면 기꺼이 내어 주고 싸 온 도시락이라도 맛보라고 줄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다.     


   지금처럼 무료 급식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지만, 학교에는 널찍한 학생 식당이 있어서, 급식 신청을 한 친구들은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신청하지 않은 친구들은 도시락을 싸 왔다. 아침부터 도시락 준비하는 어머니의 수고스러움을 전혀 알지 못하던 나이기도 했지만, 도시락을 싸달라고 고집 피웠던 이유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몰래 학교 뒷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적당한 곳에 낙엽을 치우고 신문지를 깔면 근사한 식탁이 차려진다. 함께 하는 친구들은 대략 대여섯 명 정도였는데,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쳐 놓으면 식탁이 가득 찼다. 도시락 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 달걀, 장아찌, 콩나물, 멸치 등등 모두 비슷비슷하였고 매일 다른 반찬을 싸 올 수 있는 형편들도 아니었지만, 우리 집 멸치와 친구 집 멸치 맛은 완전히 달랐기에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 매일 똑같은 밥에 똑같은 반찬을 가지고 오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약속이나 한 듯 “오늘도 그거네”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어느 날 누군가 화려하고 값비싼 반찬을 꺼낸다고 하더라도 아까워하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지금껏 매일 먹어왔던 끼니 중, 유독 그 시절 산속에서 먹던 점심이 기억나는 이유는 반찬 때문이 아니다.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몸은 지치고 마음은 메말라 가던 때, 학교 뒷산은 허락받지 않은 비밀스러운 탈출의 장소였고, 새와 바람 소리를 듣고 몸과 마음의 땀을 식힐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소문이라도 나서 선생님이 길목을 지키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들은 철저히 비밀스럽게 움직였는데, 그 긴장감이란 게 마음속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듯하기도 했다.     


   매일 산에 올라가 점심 먹을 장소를 물색하던 걸 생각해 보니, 그때는 의식이 몸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 같으면 땅이 고른지, 개미굴이라도 있는지, 나무 그늘은 충분한지 등등 주변을 살피고 자리를 폈을 텐데, 그땐 누군가가 여기서 먹자고 먼저 말을 꺼내면 자리 먼저 폈다가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 반복됐으니 말이다. 나무 그늘이 있더라도 대여섯 명이 앉으면 누구는 그늘에, 누구는 땡볕에, 누구는 반반에 앉게 되고, 혹여나 살짝이라도 경사진 땅이라면 아래쪽에 앉은 친구는 뒤로 넘어갈 듯한 자세로 앉아야 하니, 모두가 만족하는 명당을 찾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낙엽 소리가 다양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자리를 만드느라 쭈그리고 앉아서 손으로 낙엽을 쓸어 넘길 때 나는 소리는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운동화 밑 고무 창에 막혀 올라오지 못하는 소리는 귀를 살짝 간지럽힌다면, 귀를 가까이하고 낙엽을 손으로 쓸어 넘기는 소리는 분명 풍부한 울림이 있었다. 가끔 낙엽을 걷어내다가 다리 많은 벌레라도 튀어나올 때 “꺅”하며 호들갑 떠는소리도 제법 잘 어울렸다. 더군다나 도시락을 다 먹고 눈싸움 대신 낙엽싸움이라도 할 때면, 후루룩 하늘로 솟았다가 떨어지는 낙엽들은 바람에 공중제비를 하며 합창이라도 부르는 듯했다. 다 큰 고등학생이 유치원 애들처럼 낙엽 위를 깔깔거리며 뒹구는 소리도 명랑했다.     


   그러니 기억 속 그 계절도 가을이었다. 한 여름이었다면 떨어진 나뭇잎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고, 나무 그늘이 그렇게 시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인지 올여름에는 그늘이 그리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온은 35도를 웃돌고 습도도 80퍼센트에 육박하는 날씨에는 그늘도 녹아내리듯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런 계절이 어느덧 가을 초입에 들어서자, 그늘이란 곳이 그렇게 시원한 곳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한여름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겠지만, 요즘은 한 바퀴 돌고 싶은 마음을 내어 볼 만하다. 하늘이 맑은 오후, 키 큰 가로수가 드문드문 심겨 있는 도로 옆 인도를 한참 걷다 보니 뭔가 재밌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피아노 건반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일정하게 심어진 가로수가 일정한 그늘을 만들어 내니, 나는 대여섯 걸음마다 양지와 그늘을 교차해 가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아직은 따가운 햇살과 이제야 시원해진 그늘. 이런 기막힌 음양의 조화라니. 양지와 그늘의 리듬에 맞춰 발걸음을 조절하니 작자미상의 노래가 흥얼거리며 흘러나온다. 따가운 햇살이 피부 위에 쏟아질 때는 빠른 걸음으로, 시원한 그늘이 피부를 식힐 때는 느린 걸음으로, 빨랐다 느렸다를 반복하며 가을은 반주하고 나는 노래했다.     


   그렇게 가로수 드리워진 길을 걷다 보니 문득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내가 지나온 피아노 건반은 어떤 모습일까? 저쪽에서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들도 리듬을 타는지 가볍게 가볍게 걸어오고 있다. 언젠가 저 아이들도 이런 가을의 연주를 기억해 낼 때가 있겠지. 


   내가 그 가을, 낙엽 소리를 기억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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