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 빅터 프랭클
불멸의 자기 계발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강연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명성에 걸맞게 청중의 수는 많았다. 그때 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흥분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지 못하고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하곤 했다. 그녀의 얼굴과 존재 전체에 행복이 어려 있었다. 코비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녀에게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선생님은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감사할 줄 모르는 한 남자를 돌보는 간호사입니다. 제가 해주는 어떤 일도 그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또 그는 결코 감사를 표시한 적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는 제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며 저의 잘못만을 들추어내려고 합니다. 그는 제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저는 이 고통을 때때로 가족들에게 화풀이하곤 했습니다. 다른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두 그가 죽기를 기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강단에서 '어떠한 것도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고, 또 스스로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고통을 줄 수 없다.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은 바로 내가 선택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것에 대해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자신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과연 나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권한이 있을까?'하고 말이에요.
마침내 제가 그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 싫은 일과 비참함조차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임을 인식함과 동시에 고통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벌떡 일어났던 것입니다. 저는 갑자기 감옥에서 석방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습니다. '나는 자유다! 나는 풀려났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요."
이 작은 이야기에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늘 첫 번째 화살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응이다. 즉, 두 번째 화살은 선택할 수 있다." 무슨 의미인가요, 행복도 고통도 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좋은 말'로 읽고 마는 것도,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도 이런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깨닫는 것도 모두 여러분의 선택이자 자유입니다.
물론 첫 번째 화살에 의한 '고통'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으로 인한 '괴로움'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현자들, 마음챙김 고수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 <마음챙김, 샤우나 샤피로> 中
명상 지도자, 신젠 영은 괴로움 방정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괴로움 = 고통 X 저항
우리가 만약 고통에 저항하지 않으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저항하지 않으려면 답은 하나,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린 왜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갈까요? 바로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알아차림'입니다.
예를 들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매일 욕을 입에 담는 사람은 자신이 말끝마다 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매일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매일 괴로움을 굳이 선택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겁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엔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평소에 알아차리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면, 우린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음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따라서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쟤만 사람답게 굴면, 내가 힘들 일이 없잖아.' 자극에 무의식적인 반응을 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행과 행복을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만일 누군가가 한쪽 뺨을 때린다면 다른 쪽 뺨도 내어주라." 우리는 이 말을 '보복하지 마라. 악을 악으로써 대항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오쇼라는 명상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습관적으로 행동하지 마라.' 누군가 뺨을 때린 그것은 자극입니다. 그럼 우린 습관적으로 반응합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면서 욕을 하겠죠. 하지만 다른 쪽 뺨을 내어주는 행위는 '의식적인' 행위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무엇일까요? 먼저, 앞으로 행복하기를 원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은,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평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음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시험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 뿐,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알아차림입니다. 선택하기 위해선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최대한 넓혀야 합니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명상하고 요가하는 이유도 더 잘 알아차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럼 이제, 알아차림에 대해 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