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 가면 그곳은 흡사 동물원 같았다. 닭과 병아리, 소와 송아지, 염소와 돼지, 사슴을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할머니 집에 처음 보는 황색 강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애를 쓰다듬어주며 '황구야.'라고 불렀다. 황구가 할머니의 걸음마다 들러붙어 살갑게 굴면, 할머니는 귀찮다며 황구를 발로 찼다. 그러면 황구는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고 꼬리를 더욱 열심히 흔들었다. 황구가 또 할머니 발에 치일까 봐 얼른 달려가 그러지 말고 나랑 놀자고 꼭 안아주었다. 그 애의 말랑한 발을. 따뜻하고 보드라운 털을 만지는 게 좋아서 그 애가 내 품을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았으면 했다.
1년 뒤, 외갓집을 다시 방문했을 때는 황구를 몰라볼 뻔했다. 황구가 일어서면 초등학교 5학년인 내 키와 비슷할 만큼 덩치가 컸다. 외형과 달리 강아지 때 성격 그대로 애교가 많고 순했다. 황구가 나를 기억하는지 궁금했는데 친척들 모두에게 호의적이어서 알 길이 없었다. 산책할 때면 황구는 우리의 앞과 뒤를 돌아다니며 걸음을 맞춰주었다. 황구가 기분이 좋아 흥분해서 앞발로 나를 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내 배를 앞발로 누르고 내 뺨과 코와 입술을 핥으면 녀석의 침은 찐득했고, 새우깡과 구린내가 섞인 냄새가 났다. 꼬리를 채찍처럼 흔들 때마다 내 옆구리를 때려서 아팠지만 나는 화내지 않고 웃기를 선택했다. 황구의 검은 눈이 반짝이며 내 눈을 들여다보면 황구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숨바꼭질을 하면 황구도 다 아는 것처럼 호박밭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그런 황구가 참 똑똑하고 예쁘다고 했다.
아침인 줄 알고 눈을 뜨니 해는 이미 중천에 있고 사촌들은 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 만화를 보고 있었다. 시선은 텔레비전 속에 박힌 채 느린 속도로 하품을 했다. 옆방에서는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명이 넘는 어른들이 한참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엌을 지나가던 이모가 나를 보고 사촌동생들은 이미 다 밥을 먹었다며 얼른 오라고 했다. 친척 어른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수육과 김치에 막걸리, 우거지 국을 먹으면서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밥그릇 위에 잘 익은 수육을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주며 어서 먹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막걸리를 들이켜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삼촌과 재미난 이야기를 하기 바빠 보였다. 상 한가운데 큰 대접 위로 수북하게 담겨있는 고기 틈에서 기다란 꼬리가 보였다. 내 팔뚝 길이만 한 긴 꼬리는 처음 보았다. 이모부는 그것을 작은 단위로 잘라서 연골과 껍질을 발라내며 먹었다.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일찌감치 마루 앞에 있어야 할 황구가 안보였기 때문이다. 애정이 필요한 어린애기처럼 끙끙대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밥을 먹다가 불쑥 일어나 창 밖으로 마당을 보았지만 없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마당으로 달려 나와 황구 혼자 산책을 간 건 아닌가 싶어서 멀리 마을로 난 길을 주시했다. 내 뒤를 사촌들이 쪼르르 따라와 메뚜기를 잡으러 가자고 했지만 나 없는 사이에 황구가 올까 봐 싫다고 했다.
황구야! 하고 부르며 마당을 둘러보는데 커다란 가마솥 뚜껑이 반쯤 열려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속에 있는 황구의 머리를 보았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내가 먹은 고기의 정체를 깨달으면서 뺨 위로 턱 아래로 굵고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몰랐지만 아버지는 알면서도 황구를 먹었다. 어린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친척들 모두가 황구를 한 번씩은 정답게 불렀고 다정히 쓰다듬은 적이 있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죽음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자라면서 그 일을 잊었다가도 문득 황구가 생각나면 매 맞은 개의 표정 같은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커가면서 사람들이 개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어떤 날은 뉴스에서 백구의 목을 매달고 달리는 트럭을 보았다. 축 늘어진 백구의 몸에서 난 피가 도로 위로 길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던 주민이 자신의 개를 매일 두들겨 패서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결국은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개를 던진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또 이사를 가면서 가족처럼 키운 개를 고속도로 한복판에 버리고 간 비정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 개는 곧바로 뒤차에 치여 죽었다. 그런 일들이 지치지도 않고 지금도 매일매일 일어난다. 개들의 슬픈 이야기를 접할 대면 내 속에선 고요한 불씨 같은 것이 자라났다.
"동물에 정성 들일 시간에 사람한테 더 잘해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점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산책 봉사를 하면서 상처받은 개들을 쓰다듬어 주고 오면 마음이 좀 나아졌다. 사람에게 그런 과분한 사랑을 주지 말라고 말하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개의 눈은 여전히 사랑만이 가득하다. 그들을 통해서 어릴 적 황구의 눈빛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