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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Feb 03. 2022

[마흔에세이 10] 오감의 상호작용

늘, 청각보다 후각이 먼저 치우친다!

퇴근 무렵,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발길을 돌릴 무렵.


여의도 복판의 백색소음이

고막을 울린다.


집에 가는 길목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치킨집의 치킨 냄새도,

삼겹살집의 고기 굽는 냄새도,

옥수수 파는 아저씨의

구수한 찐 옥수수 냄새도,

허기를 채우지 못할 정도의

냄새를 풍긴다.


간혹

막내 아이의 기저귀 응아 냄새를

맡지 못하고 방관하다

아내의 핀잔을 듣지만,

자다가도 윗집의 안마의자 소리는

왜 그리 잘 들리는지


마흔에 접어들자

후각은 쇠퇴하고,

청각은 진보한다.


시각도 미각도 촉각도

점점 나이에 맞게 수그러드는데

왜 그리 고막이 나대는지

발달된 청각에

잠 못 드는 밤이 많다.


퇴근길 풍경 (2021)


어느 날 아침,

운전을 하다가

문득 이런 고민이 들었다.


내가 지닌 오감의 능력 중

어떤 게 가장 쇠퇴하는 게

삶의 질을 떨어뜨릴까?


불편한 질문일 수 있겠다.

특히, 장애가 있다면 더더욱.


"볼 수 없으면 아름다운 세상과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슬프고,

들을 수 없다면 아름다운 노래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슬프고,

맛을 못 본다면 어떤 음식을 보더라도

식욕이 나질 않아서 슬플 거고,

냄새를 못 맡는다면

아이들 기저귀 바꾸는 것 하나

내 맘대로 안 돼 슬프겠지"


그럭저럭 쇠퇴하더라도

오감이 서로 상호작용해야

사는 맛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오늘도 아이의 응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줄어든다는데

나는 유독 아침잠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출근하고

반복되는 아침의 일상이

언제나 늘, 힘겹다.


유명한 <명상록>의 저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평생 늦잠을 잤다고 한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누구나 아침마다

"침대에서 나가야 하나"라는

철학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새벽일을 나가는

시장 반찬가게 아주머니도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육아휴직을 시작한

이 시대의 많은 가장들도

침대 문제는 공통된 분모의 고민거리다.


이 버거운 침대 문제를 극복하면

우리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직장이라는 전선에 몸을 맡긴다.


수많은 보고서를 만들고,

수많은 회의에서 거친 말들을 내뱉고,

숱한 좋고 싫은 만남을 통한

일일마다 오감이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지친 뇌가 침대의 밑그림을 그린다.


어린 두 딸을 보느라

아이들 취침시간인 열 시를 넘겨야

그나마 몸을 쉴 수 있지만

주어진 짧은 밤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포기하기는 싫어

열 시부터 주어진 모든 오감을

끌어올리는 부스터샷을 맞는다.


그건 소주 한 잔이 될 수도 있고,

자극적인 영화가 될 수도 있고,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신체활동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부스터샷을 맞고

주어진 짧은 자유시간을 만끽하면

또 침대문제에 직면하러

몸을 뉘인다.



오감을 깨우는 부스터 샷 하나


설이 지나자

마흔 해의 십이지분의 일이

순삭해버렸다.


격일제 음주는

코로나 시국의 일과가 됐지만

주량도 오감 따라

날이 다르게 쇠퇴한다.


가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악몽을 꾼다.


피곤한 몸으로

아침을 맞는 날엔

아침이 오는 게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애써 담담한 척

이불을 걷어차고

아침을 준비한다.

난 가장이니까.


이 무거운 중압감을 벗어날 때가

그 언젠간 오겠지.



손목의 잔근육 하나가

아이를 안다가 무리했는지

벌써 3주째 시큰한 날들이다.

가벼운 책 한 권을

드는 것도 버겁다.


작은 통각에도

이렇게 많은 불편이 따르는데

우리 몸은 참

가녀리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드는 건

신체로부터의 일탈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그 언젠가 시력도, 청력도, 보폭도

버거워질 때가 오겠지만.


마흔의 날들은

오감의 쇠퇴 속에 버팀의 연속인지라

만사에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작은 호기를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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