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 속의 배경은 수십년에서 수백년 뒤로, 지금 우리가 느끼기에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이미 사라졌거나 거의 사라진 세상이다. 책에서는 그런 유토피아같은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인지 되물어보고 그에 대한 답으로(단편집이라 많은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이야기마다 [주인공 혹은 화자가 생각하기에 다른 등장인물 중 하나가 자신의 생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선택지를 고르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불행이 없는 유토피아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하고 위험한 세계에 남아 정착한다든지,
자신이 허언증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계 행성의 정보에 대한 이야기나 어떻게 40여년을 우주에서 죽지않고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든지,
기쁨과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물건 중에 기쁨이 아닌 우울함을 느끼게 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든지,
가족이 살고 있는 행성에 자신이 도착할 때 쯤이면 이미 모두 죽어있을 것임을 아는데도 그 행성에 가려고 한다든지,
성공적인 우주여행을 앞에두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심해에 뛰어들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든지 말이다.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 느꼈을 감정을 생각해보면, 오래 전 읽은 생의 이면이라는 책에서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써야 하는 글이 있다”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좋은게 좋은거지를 거부하는 듯한 선택을 했던 그들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할 것 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