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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Mar 24. 2022

<그래비티>-자신을 짓누르는 중력을 딛고 서다

Gravity,2013 - 알폰소 쿠아론

 Science Fiction을 줄여 Sci-FI(싸이파이)라고도 불리고 국내에서는 흔히 SF로 불리는 SF 장르 영화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과학이나 과학 기술의 영향을 받은 소재를 다루는 무수한 영화들을 통칭한다. 시간여행이나 로봇, 미래사회, 재앙 이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등 하위 장르가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SF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재는 역시 우주가 아닐까 싶다. 우스갯소리로 SF가 Space Fiction을 줄인 게 아니냐 할 정도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다. <스타워즈>, <스타트렉>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영화도 있고 <에이리언>, <E.T>, <프레데터> 등 외계 생명체를 다루는 장르 영화도 있고 <인터스텔라>, <마션>처럼 우주를 탐사하는 장르 영화도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하위 장르로 나눠보자면 우주 생존 장르 혹 우주 재난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혹자는 <그래비티>를 우주 탐사 장르 영화라고 구분한다. 그렇게 볼 수는 있지만 적합해 보이진 않는다. 보통 우주 탐사 장르 영화들은 지구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모종의 특수 임무를 지니고 우주로 나가 우여곡절을 겪는 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임무의 성공 여부가 중요한 영화도 있고 그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게 목적인 영화도 있다. <그래비티>는 시작부터 다르다.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영화가 시작하고 허블 망원경을 수리해야 하는 그들의 임무는 처음부터 이미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때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들이 주인공들을 덮치고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광활한 우주 속에 덩그러니 놓이게 된다. 이후부터 영화는 라이언이 지구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라이언이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와 우주를 유영하기도 하고 소유즈선을 타고 모험을 한다는 것, 그리고 배경으로 신비로운 우주와 너무나 아름다운 지구가 태양 빛과 맞물려 장관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우주 탐사의 느낌도 나긴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과는 달리 그 배경엔 생존을 위한 투쟁이 깔려있기 때문에 탐사라는 용어랑은 매칭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래비티>가 탐사보다는 생존과 재난이라는 키워드에 가까운 건 맞지만 완벽한 정답이라기엔 부족하다. 이 영화는 한 편으로 라이언 박사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서사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처음 맷에 의해 구조될 때 라이언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다. 잊을 수 없는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소식을 드라이브 중에 들은 라이언은 이후로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정처 없이 드라이브하는 반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소중한 딸을 허무하게 잃은 후 그녀는 삶의 목적이나 의지를 많이 상실한 듯하다. 어쩌면 시끄러운 소리 없이 고요한 우주는 그녀에게 꼭 필요한 도피처였을지도 모른다. 삶의 의지를 잃은 탓인지 라이언은 극 초반엔 공포에 질려 맷의 도움만 받는 다소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런 라이언은 차츰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맞서고 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 기점은 맷의 희생으로 볼 수 있다. ISS에 무사 도착한 라이언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무거운 우주복을 벗어 던지고 뱃속의 태아처럼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무중력(양수 속)을 부유하는 것이 었다. 이 씬 이후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 소유즈선을 타고 가다 한 번 더 위기가 왔지만, 그때도 환영 속 맷의 도움으로 ‘이륙과 착륙은 같다’라는 마치 ‘삶과 죽음은 같다’처럼 철학적인 깨우침을 얻고 라이언은 숱한 역경을 헤치고 생환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짓누르던 그래비티와도 같은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결말은 자못 감동적이다.




 <그래비티>의 사운드와 연출에 대해서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다. 영화가 시작할 때 인상적인 자막이 나온다. 우주 공간에는 소리를 전달할 매개체가 없고 생명체가 살 수 없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함을 전면적으로 보여주니 오히려 생소하다. <그래비티>의 우주 공간에서 사운드는 ‘논 디제틱 사운드’인 영화 음악과 ‘대사’뿐이다. 그래서 우주 공간에서 충돌이 일어나거나 폭발이 일어나거나 문이 열리거나 할 때 아무런 소리가 없다. 뭔가 들려야 할 거 같은데 이곳은 우주 공간이기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게 맞다. 이 모순된 감각이 생소함을 주고 몰입도를 높여준다. 대신 긴장감 조성이 필요한 씬에는 여지없이 ‘스티븐 프라이스’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연출도 돋보인다. 우선 처음 라이언 박사가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튕겨 나가는 씬을 보면 클로즈업을 통해 그 공포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꽉 찬 프레임에 라이언이 과호흡을 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마저 숨이 막힌다. 그리고 카메라가 라이언의 헬멧 밖과 안을 넘나들며 주인공이 보고 있는 광활한 우주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훌륭하게 해소한다. 다른 장면은 볼트가 날아가는 씬이다. 지구에서처럼 볼트를 풀고 놔두자 볼트가 자유롭게 유영한다. 이 씬은 총 두 번 나온다. 처음엔 라이언의 조력자인 맷의 존재로 아무 문제 없이 수월하게 볼트를 잡아낸다. 두 번째 볼트가 날아갈 때는 맷이 없다. 어찌어찌 라이언이 볼트를 잡았지만, 화면이 팬(pan)하며 우주공간에서 날아오는 위험한 잔해들이 잡히고 주인공은 큰 위기에 처한다. 이 주인공이 처한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중국의 ‘톈궁’ 우주정거장을 유영하는 장면이다. 이런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영화에서 몇 번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관객은 그 공간에 실재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비티>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를 타선이 없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경이로운 영상 속 상상도 못 해본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SF를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영화 속 광활한 우주를 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는 감탄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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