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kirk, 2017 - 크리스토퍼 놀란
흔히 ‘전쟁 장르 영화’는 커다란 스케일로 몰아치는 눈을 뗄 수 없는 액션(<트로이>, <킹덤 오브 헤븐>),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불굴의 임무를 수행하는 영웅적인 장교나 병사의 모습(<라이언 일병 구하기>, <300>) 그리고 전쟁의 끔찍한 참상과 전쟁을 겪는 군인들의 심리(<1917>, <지옥의 묵시록>, <허트 로커>)등 많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워낙 역동적이고 할 이야기가 많은 소재인 만큼 다양한 시기의 무수한 전쟁을 다룬 장르 영화들이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정도로 많다. 그 중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 장르 영화인 <덩케르크>는 앞서 간략히 언급한 이미지들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 <덩케르크>만의 차별적인 특징을 보유하고 있는 좋은 영화다.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그린 영화다. 그때 상황을 보면 독일군의 계속되는 진격에 약 40만에 달하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프랑스에 있는 덩케르크 해안가까지 몰렸고 이곳을 철수하지 못하면 병력 전체가 섬멸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을 다루는 영화다 보니 <덩케르크>는 군인의 영웅적인 모습보다 적군의 폭격에 벌벌 떠는 모습, 어떻게든 철수하고 생존하려는 군인의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 보통의 전쟁 장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규모 지상 총격전은 이 영화에 없다. 심지어 영화 속 주적이라 할 수 있는 독일군은 프레임 안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직접 모습을 보이기보단 아군을 공격하는 적기나 배에 남겨지는 총알 자국처럼 간접적으로만 등장한다. 전쟁 장르 영화이지만 전투를 벌이는 씬이 많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스펙터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버즈 아이뷰로 잡은 광활한 해안가와 바다, 그리고 상공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규모 공중전이 있다. 하지만 철수작전이 배경인 만큼 이 공중전 역시 아군의 안전한 철수를 돕는 보호의 역할에 그친다.
전쟁 과정에서 군인은 민간인을 보호하는 게 원칙이다. <덩케르크>에서는 반대로 철수하는 군인을 돕고 보호하기 위해 민간인들이 나선다. 이 지점도 보통의 전쟁 장르 영화하고는 차별적인 부분이었다. 덩케르크에 고립되어 철수만 기다리며 날로 쇠약해지고 겁 많아진 군인들과 달리 이들을 도우러 자발적으로 나선 민간인들은 강인하고 의지적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전술적인 씬 또한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민간인 선장 ‘도슨(마크 라이런스)’이 배를 지휘하는 부분이었다. 보통 전쟁 장르 영화에서 전술 작전은 군인이 수행하는 일이다.
이어서 <덩케르크>만의 독창적인 특징들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웅장한 분위기와 긴장감 조성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을 우선 언급해야 할 거 같다. 시곗바늘의 째깍째깍 소리가 사운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며 지속해서 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시곗바늘은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이병 ‘토미(핀 화이트헤드)’가 영국에 도착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편안하게 몸을 누이고서야 멈춘다. 한순간 긴장을 놓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덩케르크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이제는 안전한 고향에 돌아왔음을 상징하는 부분이었다.
계속 들리던 이 째깍째깍 소리는 시간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 <덩케르크>는 육군 병사들의 일주일, 그들을 도우러 가는 민간인 배의 하루, 하늘에서 그들 전체를 보호하는 조종사의 한 시간이라는 세 파트로 나뉘어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세 파트가 자유롭게 교차 편집되며 진행되고 영화의 말미엔 나뉜 파트들이 한 시점으로 뭉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시간의 축약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을 잘 살린 부분이며 놀란 감독의 장기인 시간적 플롯 조작이 돋보이는 연출이었다. 개인적으로 전쟁 장르 영화 관점에서 <덩케르크>가 지닌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 이 시간적 플롯 조작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차별적이거나 독창적이진 않지만,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점 하나를 언급하고자 한다. 바로 감독의 모국인 ‘영국’에 대한 영웅주의적인 서사다. 앞서 영화 속에서 군인의 영웅적인 모습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언급을 했다. 하지만 이는 두려움에 떨며 철수를 원하는 40만 명의 일반 병사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작중에서 영웅주의가 드러나는 부분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상공에서 돕는 조종사들이다. 그 중 ‘파리어(톰 하디’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병사들의 철수를 돕고 마지막엔 독일군에게 붙잡힌다. 또 다른 하나는 잔교 위에서 병사들의 철수를 진두지휘하는 ‘볼튼(케네스 브래너)’ 중령이다. 영국 군인을 거의 다 철수시켰고 다른 장교들도 떠나는데 볼튼은 잔교를 지킨다. 그러면서 ‘나는 남아서 프랑스를 위해 돕겠다’라는 대사를 던진다. 당시 영국 총리인 ‘처칠’이 공식적으로 연합군을 철수시키라 했으나 영화에도 나왔듯 최우선 목표는 자국민의 철수였다.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굳이 위험한 곳에 남아서 홀로 프랑스를 돕겠다는 볼튼은 영국에 대한 영웅주의적인 서사를 대변하는 인물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