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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e Apr 17. 2024

애인 1

소설 습작

진은 민의 뒷모습을 본다. 이발을 하지 않아 뒷머리가 옷깃을 조금 덮고 있다. 민은 옷을 입으면 골격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만큼 마른 체형이다. 겨울 스웨터를 입으면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덮은 것처럼 보인다. 진은 숨길 것이 많아 보이고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냘픈 민의 몸이 좋다. 민은 아까부터 책상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은 그걸 궁금해할 만한 여유가 없다.


사실 진은 민의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 말을 참고 있다. 아니, 민과 교제를 시작한 직후부터 계속 참고 있는 중이다. 진은 민에게 호감을 느끼고 머릿속에서 민의 생각이 떠나지 않아 민과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진이 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난 너에게 호감을 느껴'나 '너가 생각나'가 아니었다. 진은 민에게 정확히 '사랑해'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쩐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선 진은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민을 사랑하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그런 부정확한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도 되는 건지는 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진은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터져나올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민이 보이지 않는 밧줄을 진의 혀에 동여매 힘껏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내가 아끼는 건데 어디에 둔 지 모르겠다."

"나중에 찾으면 보여줘."

무엇을 찾는 건지 몰라서 별로 궁금하지 않지만 진은 우선 그렇게 대답한다.


민이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진의 옆에 털썩 앉는다. 민의 살냄새가 코끝에 끼친다. 민에게는 강한 살냄새가 났다. 심지어 혼자 거리를 걷고 있을 때도 민의 냄새가 났다. 코도 착각을 하나, 뇌신경에 문제가 생겼나, 냄새에 중독된 것일까. 진은 민의 어깨에 코를 대고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진은 또래에 비해 좁지만 자신과는 다르게 직각으로 떨어지는 민의 어깨도 마음에 든다. 기대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나란히 걷기에는 부담이 없다.


"네가 없을 때도 너의 냄새가 나. 진짜 이상해."


민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진을 빤하게 바라본다.

진은 무엇보다도 민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다. 끊임없이 표현해야 하는 것은 진이 가장 못하는 것이고, 민은 과묵한 편에 가깝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말을 해 진과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하거나 놀라게 만든다. 진은 민의 눈이 다른 사람보다 깊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바라보다가 깊어진 눈처럼 느껴져, 진은 민의 눈이 슬퍼 보이기 시작한다.

진은 또 이상한 말을 해버릴 것 같은 충동이 휩싸인다.


민이 진에게 말한다.


"사랑해“


진은 민의 눈을 유심히 바라보느라, 민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민이 진에게 입을 맞춘다.

전하고 싶던 말을 되려 받게 된 진은 '진심일까?' 잠시 생각했고, 민은 입을 맞추며 '괜찮을까?' 조금 걱정했지만, 한낮의 미지근한 날숨이 둘의 눈을 감겨준다. 진과 민은 사람의 숨에서도 냄새가 난다는 것을 처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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