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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찬우 Sep 25. 2024

성장의 방향

 우리는 가능한 자주 만났다. 특별한 목적이나 할 일을 정하지는 않았었다. 센트럴 파크를 걷거나, 한강 공중 공원을 자주 걸었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알터는 50대 이상이었으며 20대 알터 여성은 흔하지는 않았다. 20대에 알터가 되었다는 건 말하기 힘든 사연이 있을게 분명했다.  사고, 질병 혹은 범죄의 피해자 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2040년 대체신체가 판매된 이후 나이는 의미가 없어졌다. 대체신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냉동 상태로 보관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2040년, 우리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물론 몸은 다른 형태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알터가 늘어날수록 사람을 외모만 보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으며, 2041년 알터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우리나라의 존댓말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사하는 2048년 Z사의 버닝게이트 사고 피해자였다. 과거에는 자동차끼리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빈번했었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고령화 국가가 되면서 해가 갈수록 대형 교통사고가 잦아졌었다. 특정 나이 이후의 노령 운전자에 대한 운전면허 갱신제도가 필요하다는 검토도 있었지만, 2039년 수동운전금지법 이후 전 차량의 자율주행으로 교통사고는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나 사람들이 우려했던 해킹이나 오류에 의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고, 높은 세계표준 보안등급을 통과한 17개 회사의 자동차만이 대한민국에서 자율주행이 허가되었다. 물론 Z사가 지속적 자동차화재로 퇴출되기 전까지였다.




 오늘은 사하와 데이트를 해야 한다. 데이트를 해야 한다라는 결론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그 시작이 데이트를 하고 싶다 인지 아니면 사하를 만난 지 3일이 지났기 때문인지 혹은 리비도 때문인지, 어쨌든 오늘은 그녀를 만나고 싶다. 오늘 사하와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영화관에 가야 할까? 무엇을 할지 정해놓지 않는다면 난 또 미술관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사하는 서울 5 대학을 졸업한 예술가이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그림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으니 또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도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유명 작품들을 3D스캔하여 3D출력하니 마띠에르까지 똑같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하는 루브르 서울은 fake라고 하였다. 그래서 파리에 가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존중이라고 하였지만 그 존중이라는 말은 참 고상하고 무용하다 생각했다.


 사하는 뉴레지스탕스파이다. AI의 예술 개입에 저항하여 만들어진 미술 집단이다. 뉴레지스탕스파는 단색화 이후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수성과 존엄을 세계 미술시장에서 수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미술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사람들 또한 AI로 자본을 축적한 자들이 아닌가! 안타까운 자기변호 혹은 역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사하는 서울 1구에 나는 서울 3구에 살고 있다. 가까운 영화관이 있는데도 사하는 14구의 영화관을 항상 고집하였다.

 잭 카멜 감독의 신작 <Layla>는 그 해의 가장 인기 있는 반응생성형 AI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과 기분에 따라 실시간으로 영화가 변하기 때문에 누구와 보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누구와 함께 보는지를 결정할 수 없으니 어느 지역 영화관에서 보느냐가 중요했다. 그래서 사하는 항상 14구의 영화관을 고집했었다. 14구는 서울 5 대학이 있으며 많은 예술가들의 거주 지구이다.


 나는 이 영화를 3번째 보았다. 한 번은 내가 살고 있는 3구에서, 한 번은 17구에서 그리고 오늘 14구에서 보게 되었다. 3구에서는 오락성이 강했다면 17구는 액션이 강하다. 14구에서는 대사가 많다. 정말 지독하게 재미없는 대사가 많다.


    “17구에서 참 재미있었는데, 14구랑 정말 다르네.”


    “17구는 안 봐도 뻔하지. 때리고 부수고 쫓아가고 뻔한 거 아냐?”


 사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사하를 사랑하지만 모든 예술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 눈에는 그저 우린 다른 것을 볼 수 있다고 생떼 쓰는 아이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말이야 이 영화를 흉악범이 수감된 청송교도소에서 보게 되면 어떨 거 같아?”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글쎄. 멋진 생각이긴 하네. 반응생성형의 코딩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 3구에서 본 영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하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내가 살고 있는 3구와 청송교도소가 어떻게 같은 반응생성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3구는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모여있잖아. 반응생성형 AI는 사람들이 어떤 콘텐츠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지만 입력값으로 사용할 뿐이야. 그 사람들의 도덕성과 경제력 또는 교육 수준을 감안하지 않아. 3구 사람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기 것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이기는 게임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야. 청소교도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말문이 막혔다. 내가 살고 있는 3구를 청송교도소 수감 흉악범과 동일시하고 있는 듯한 사하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혹시 이 말이 사하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시각일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14구는 뭐가 그렇게 다른 건데. 너네도 누가 성공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건 똑같지 않아?”


 나는 붉어진 얼굴로 되물었다.


    “당연하지. 사람은 다 비슷하니까. 3구의 모두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었어. 하지만 3구의 기업과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발전된, 타사보다 타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고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어. 모두의 성장 방향이 똑같다는 거야. 하지만 14구의 많은 사람들의 성장 방향은 제멋대로야. 나만 봐도 그렇잖아. 난 뉴레지스탕스파잖아. AI자체를 거부하기도 하고 역방향으로 가기도 해. 모두가 학습된 발전이라는 이름의 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하면 할수록 사하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모두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두자.”


 나는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 청송교도소의 흉악범의 행위가 가치가 있었을까? 어떤 가치가 있는 거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거지?”


    “글쎄. 내가 흉악범과 똑같은 반응생성형 AI 영화를 보게 된 다는 것도 참 슬픈 일이긴 하네.”


 나는 비꼬듯 말했다.


    “어차피 너와 그들은 달라. 같은 요구에도 다른 행동을 하니까. 너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이길 방법 극복할 방법을 생각할 거야. 하지만 그들은 그 상황을 회피하고 파괴하고 싶어 할 테니까.”


 그래도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말이 나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아니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에 만족한 것일까? 나는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어떻게 성장하는 건지 궁금했다.

    - 그저 이렇게 만남이 잦아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수 있는 걸까?

    - 정말 그렇다면 이대로 두어도 되는 걸까?


 나와 사하가 앞으로 어떤 의미가 되어갈지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너그러운 역할을 수행할지는 기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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