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다둥이네의 마지막 하루, 8세 아동 사망 사건'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한편으론 너무나 허망하게 떠나간 유준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유준이는 못난 부모의 학대와 방임으로 너무나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유준이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아동 학대로 신고가 10일 전에 이뤄졌기에, 조금만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충분히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타이밍이 있었다.
https://youtu.be/Z0 rBMXCTzsE? si=guP95 R6 JEemHeKOr
더구나 부모는 이미 아동학대로 처벌을 받았기에 정부의 관리 대상이었다. 아동학대가 처음 접수된 2018년부터 이 부모는 관련 기관으로부터 수시로 상담과 점검을 받아왔는데 이 부모의 행동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상 학대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라고 판단이 되어 사례가 종결이 되어 버렸다. 물론 아동학대 기관이 일일이 모든 사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 조금만 더 세심한 관심을 갖고 조사를 했더라면 충분히 유준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
한국에서 가정폭력을 다루기가 힘든 것은 법 체계나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가정폭력에 관한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한국은 이미 법이나 체계가 많이 선진화되어 있다. 어제 방송을 보면서, 유준이 부모가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만 해도 500만 원이 넘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복지 선진국인 뉴질랜드에서 주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한국은 이미 복지 선진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법 체계나 시스템에 비해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은 그에 반해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는 생각 든다. 한국 특유의 가정 문화로 인해 대부분 가정 문제는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유준이네 지인들이나 주위에 사람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유준이네 집 사정이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유준이가 머리를 눈을 가릴 정도로 장발을 하고 다닌 것이나 옷도 계속 똑같은 옷을 맨날 입고 다녔다고 한디. 심지어 아이들 몸에서 담배 냄새가 너무나 나서 10분만 방에서 놀아도 방에 담배 냄새로 가득했다고 한다. 이미 아동학대로 의심할 수 있는 충분한 증상들이 보였다.
유준이네 지인들이나, 학교 선생님들, 학원 관계자들, 이웃들 혹은 아동학대 기관까지도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 심각성을 깨닫고 지속적인 신고를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서는 그러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가정폭력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대부분 가정폭력을 부부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한다. 더구나 가정 폭력이 단지 부부 사이에서만 아니라 형제, 자매 사이에서 혹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가정폭력의 정의에 의하면 데이트 폭력도 가정 폭력에 해당이 된다. 이 경우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은 현저히 낮아진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그 가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뀌어야 한다. 행여라도 가정 폭력이나 아동학대가 의심이 되면, 주저 말고 신고를 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경찰이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신고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경찰의 대응이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물론 결코 한국 경찰분들의 노고를 폄하하고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한 분이 자신의 형제와 말다툼을 하던 중에 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출동한 경찰관의 반응에 당황해서 글을 올렸다.
충동한 경찰관의 말을 요약하자면,
1. 사건 당일 신고한 것이 아니니 처벌이 불가능하다
2. 형제, 자매 사이에서 다툼은 일반적이다.
3. 본인도 형제, 자매 골절시킨 경험이 있다.
나는 이 분의 글을 읽으며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이 가정폭력을 대하는 경찰의 반응이라고 하니 마음이 씁쓸해졌다. 행여라도 가정폭력 피해자 중에서 신고했는데 경찰이 이런 식으로 반응했다면, 얼마나 절망을 했을까?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찾아보니,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경찰로 인해 2차 피해를 겪는 일들이 빈번하게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리리 칼에 찔리세요. 증거가 남게"
가정폭력을 당해 도움을 청한 피해자가 이 말을 경찰로부터 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가정폭력이 심각한 나라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나라다. 그만큼 가정폭력으로 죽는 여성이 한 해에 무려 190명 정도가 된다 (2019년 기준). 그에 반해, 한국은 인구수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2020년 기준 97명의 여성이 남편 혹은 파트너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런 높은 사망률로 인해서, 가정폭력을 아주 심각하게 다룬다. 그래서 크라이스트처치를 비롯해서 대략 3개 도시가 Integrated Safety Response Team (줄여서 ISR team)이라는 파일롯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q5gdiZLJI&t=1s
뉴질랜드에서는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절대로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건 당일에 신고하지 않고 며칠이 지나서 신고를 해도 똑같은 무게로 사건을 다룬다.
가정 폭력이 발생을 하면 ISR 팀에 보고서를 작성해서 바로 보낸다. 그러면 그다음 날 아침 ISR 팀은 정기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에는 경찰, 아동학대 기관, 보건 복지부, 다수의 가정 폭력 관련 기관의 대표자들이 참석을 한다. 그 회의에서는 전날 보고가 올라온 가정 폭력 사건을 심도 있게 의논하고,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다.
예를 들어, 피해 여성이 거주할 집이 없다면 보건 복지부가 나서서 거처를 마련해 준다. 뿐만 아니라, 피해 여성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이혼 등을 하지 못하는 경우 곧바로 보조금 등을 지원한다. 혹은 접근금지 명령이나 이혼 등의 법적 조치가 필요한 경우는 가정 폭력 도움 기관에서 변호사를 무료로 지원한다.
그리고 회의 마지막에는 이 피해자를 전담으로 지원할 가정 폭력 도움 기관을 선정하여 한 기관이 지속적으로 관리하여 소통 채널을 일원화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번은 40대 한 여성 환자가 갈비뼈가 부러진 채 병원 응급실에 왔다.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사회복지사 굿네이버입니다". 이어 1시간 정도를 전날 벌여졌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어디에 안전하게 머무를 곳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녀는 다른 도시에서 왔기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하나도 없었다. "돈도 하나도 없습니다.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서 지갑도 놓고 왔습니다. 제 엄마 아빠가 있는 도시로 가고 싶습니다. 근데 돈이 없어요!"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종종 병원 사회복지사의 한계가 느껴진다. 정작 병원 사회복지사가 피해자들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내 돈이라도 써서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고 싶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서, ISR 팀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가정 폭력 사건 기록을 살펴봤다. 다행히도 그 사건이 경찰로부터 보고가 되어 그날 오전에 회의가 된 상태였다. "아하, 여성 쉼터 기관에 배정이 되었군!" 하며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전 남편에게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왔습니다. 지금 퇴원 후에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환자는 지금 부모님이 계신 도시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 티켓을 살 돈이 없습니다. 혹시 비행기 티켓을 마련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최대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며 부탁을 했다.
1시간, 2시간을 기다리는데 그 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마음이 초초해졌다. 그러다 전화벨이 울렸다. "이미 환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오늘 저녁 9시 비행기 예약을 했습니다" 그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You are awesome! (너 진짜 최고야!)"하며 연신 감사의 표현을 했다. 그리고 병원 수간호사에게 부탁을 해서 환자가 공항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택시를 준비해 줬다.
가정 폭력 피해를 받은 여성들은 때때로 그 순간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처럼 느낀다. 더욱이 그 모든 것이 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 생각하여 죄책감, 자책감을 느낀다. 이때 누군가 옆에서 그들을 믿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옆을 지켜주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럴 때 그들은 더욱 용기를 내어 가정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