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 서른,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by 굿네이버

사람들은 왜 이민을 결심할까?

누구는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또 누구는 자녀를 위한 더 좋은 환경을 꿈꾸며 떠난다. 사랑하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국의 안정된 삶을 정리하고 미지의 설렘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의 시작은 결국, 한국에서의 삶이 더는 채워지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길. 그게 바로 이민의 본질일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스스로 내 이민의 이유가 여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안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자유도, 자녀 교육 때문도, 뉴질랜드 자연환경에 매료가 되어서도 아니었다. 나의 출발은 신앙심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기 뉴질랜드에 중고등부 전도사 자리가 생겼어. 꼭 네가 왔으면 좋겠어." 당시 나는 시큰둥했다. "그래, 한번 기도해 볼게." 그때만 해도 뉴질랜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솔직히 세계 지도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너무나 낯선 곳이었다. 내 반응이 의아했던 친구는 "여기, 사람들이 엄청 오고 싶어 하는 곳이야"라고 덧붙였다.


2006년 9월 26일, 결혼식을 치르고 2주 만에 나와 아내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순진하고 순박한 청년에 불과했던 우리는 신앙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나는 딱 2년만 살다가 선교지로 떠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2년은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로 바뀌어 버렸다.


한국을 떠나기 전 섬기던 목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우리의 경제적 상황을 잘 아셨기에 목사님의 걱정 어린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그래, 거기 가서는 어떻게 살 거야?" 그 물음에 우리는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믿음으로 살 겁니다."


지금에 와서야 보지만, 어쩌면 그 '믿음'이라는 말로 보기 좋게 포장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신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선교사로 나갔던 나는 결혼을 앞두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신혼집을 얻을 전세 보증금도, 일정한 수입도, 심지어 파송해 줄 교회나 교단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 '믿음'을 세워줄 경제적인 안정'을 얻기 위해 이민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발을 올릴 때, 우리는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현실은, 차가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덩그러니 놓인 캐리어와 함께 막막한 공항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웃음은 설렘이었을까, 아니면 불안함이었을까.

keyword
이전 01화나는 연봉 1억 사회복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