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나서부터 외출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중 나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짐 싸기'이다. 우선, 짐을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기본적으로 챙길 것이 너무 많다. 가까운 거리에 아주 단시간만 머무른다 해도(예: 병원, 마트) 아직 기저귀 못 뗀 연년생 남매의 기저귀 대여섯 장, 물티슈, 손수건, 차에서 울 때 줄 간식거리, 마실 물을 담은 빨대컵, 아기띠 정도는 최소한으로 챙겨야 하고 그보다 더 먼 거리를 좀 더 가고자 한다면 아무리 당일치기더라도 첫째와 둘째의 끼니, 수저, 애착이불, 쪽쪽이 등이 더 추가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출준비는 늘 전쟁통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번 나는 기분이 상하곤 한다.
요즘 나는 뒤늦게 우리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이 할머니댁에 가거나 어디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엄마는 늦으셨다. 늘 우리가 차를 먼저 타서 경비실 앞에 주차해 놓으면 한참 뒤에 엄마가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그러면 아빠는 "곰티 이 여편네가 뭘 그리 꾸물댄다고 늦게 오니"라고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 당시에는 철없게도 정말 엄마가 꾸물거려서 늦는 줄 알았다. 왜 출발 직전에서야 화장실 갔다 온다 하고 화장한다고 하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아빠 말처럼 엄마가 꾸물댔나 보다고만 생각했을 뿐.
결혼하고 아기 낳고 나서야 그때 엄마의 늦음은 '꾸물거림'이 아닌 '짐 챙기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이 짐 챙기는 전적으로 엄마몫이 될 때가 많다. 열심히 가족들 짐 챙긴다고 늦은 건데도 온 가족들의 핀잔과 짜증을 들었던 우리 엄마는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을까.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고 나서야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고 엄마께 죄송했다.
그때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엄마 편이 되어주지 못한 업보를 치르는 것일까? 나는 요즘 외출 준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 외출 준비는 정말 '잘해도 본전'이라는 말이 딱이랄까?
어제 역시 그랬다. 어제는 구옆집친구의 집들이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보기로 했는데 뭘 먹을지 몰라 첫째 끼니까지도 챙겨가야 해서 상당히 분주했다. 첫째와 둘째 먹을 끼니를 부랴부랴 만들어 보온통에 담고 수저, 간식 등을 챙기고 앞서 말한 기본 준비물과 낮잠 시간 겹칠 것을 대비해 애착이불과 쪽쪽이도 챙겼다. 마지막으로 집들이 선물도 챙기고 두 아이 옷과 기저귀를 갈아입혔다. 그렇게 챙기고 나니 두 아이는 현관가드를 붙잡고 얼른 밖에 나가자며 아우성이다. 남편은 '가자' 란다. 저기요? 저 아직 세수도 못하고 옷도 못 갈아입었는데요. 남편은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옷도 다 갈아입었는데 나는 아직 자다 일어난 모습 그대로이다. 꾸미는 건 사치라는 생각에 떡진 머리는 묶어버리고 그저 옷만 갈아입었다.
내가 외출준비하면서 듣기 싫은 말 몇 가지 중 대표적인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여태 옷 안 갈아입었어? 혹은 안 씻었어?'
둘째, '(내 차림을 보고) 그렇게 가려고?'
셋째, (깜박 잊은 물건 있을 때) 으이구 혹은 고개 절레절레
어제는 그중 세 번째에 해당했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내 휴대폰도 못 챙기고 나온 것이다.
"헙! 나 휴대폰 놔두고 왔다"
"으이구 (절레절레) 잘한다"
그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또 부글부글한다. 억울하고 분하다. 백가지 중에 한 가지만 놓쳐도 핀잔을 듣는 게 외출준비다. 전날부터 뭐 준비할지 시뮬레이션 돌리고 잊지 않게 챙긴다고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저런 말 한마디 듣고 나면 마음이 팍 상해버린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나만 아니라 모든 기혼 여성(?)들은 다 겪나 보다.
한날 시어머님이랑 여행 짐을 싸는데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으휴 남자들은 몰라. 짐 싸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러면서 시아버지가 본인 옷만 다 입고 준비되면 '가자' 하면서 어머님께 늦장 부린다고 핀잔을 준다셨다. 너무 공감되어 이 이야기를 우리 친정엄마에게도 하는데 소파에 누워 주무시는 줄 알았던 우리 할머니가 불쑥 말씀하신다.
"느그 할배도 그렇다카이" 할머니는 그동안 쌓이신 게 많은지 한참을 그 이야기를 하셨다. 그날 나도 한참을 공감하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외출준비가 얼마나 바쁘고 힘든 것인지 몰라서 엄마를 오해했던 것처럼 남편 역시 그때의 나처럼 몰라서 그러리라. 어제 남편의 말에 속에서 '욱'이 몇 번 올라오고 서럽고 억울했으나, 이렇게 생각해 보니 또 이해가 된다. 늘 그렇듯 또 비슷한 상황이 다가오먼 다시 '욱'하겠지만은 이번에는 이렇게 넘어가는 걸로~ 그래도 한번 날 잡고 이야기해 봐야겠다. 외출 준비가 나에게 얼마나 부담되고 스트레스인지, 그리고 좀 더 준비에 참여해 주면 좋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