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내가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이 세상은 마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수능을 볼 무렵에는 세상 사람들의 모든 관심사가 수능인 줄 알았다. 내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아주 큰 일을 해내어 내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게 될 것이라 믿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그런 나의 생각은 해변에 돌멩이가 동글동글하게 깎이듯 조금씩 깎여갔다. 남들보다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주인공보다는 오히려 엑스트라에 가까웠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이런 내 위치가 더 확고해진달까? 내 삶은 무언가를 거창하게 이루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위대한 일을 해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두 아이를 행복하게 하고 온전한 성인이 되기까지 잘 키우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다. 두 아이가 나처럼 '내가 이 세상에서 엄청난 일을 해낼 주인공이 아닐까?' 하고 기대감과 책임감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혹은 그 생각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임무인 것만 같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삶이라 아쉬워하고 속상해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조연의 삶에 아주 만족하고 두 아이를 받쳐주는 조연으로서의 역할에 아주 충실히 임하고 있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두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나눠주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번 생의 가장 큰 내 임무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스쳐가듯 본 릴스에서 배우 차승원이 왜 그렇게 가정에만 충실하냐는 물음에 "이번 생은 그냥 이렇게 살아. 괜찮아."라고 답했던 게 생각난다. 그의 마음이 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비록 남들은 너의 삶인데 이렇게 사는 거 아깝지 않냐 할 수도 있겠지만은, 나중에 내가 아쉬워서 '내 삶을 찾을래!'하고 마음 바뀔 수도 있겠지만은 현재로선 그렇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주인공 자리를 내려놓고 이번 생은 그냥 이렇게 살련다. 그 편이 내 마음도 편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