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중
나는 운동에 잼뱅이다. 173 샌티미터에 기골이 장대한 나는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마다 체육 선생님들을 흥분시키곤 했다 (농구 선수 해 볼래? 배구? 아님 투포환?) 그러나 내가 공을 잡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마자 선생님들의 기대와 흥분은 찰나에 ‘절대로 이럴수는 없다’는 실망과 놀람으로 바뀐다. 20대 후반즈음에 골프를 배우고 싶어서 골프장에 처음 갔을 때 코치는 나를 보고 ‘박세리가 왔구나’ 생각했단다. 레슨 받은 지 3주쯤 되었을 때 아무리해도 골프폼이 늘지 않는 나를보며 코치가 “체력장 6급이셨죠? “ 하셨다. (지금도 이런 표현이 쓰이나 모르지만 당시 입시에 쓰였던 체력장은 6급이 꼴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튼 공으로 하는 스포츠부터 근력이나 스피드가 필요한 몸을 쓰는 모든 일에 겉모습과 완전 상반되게 그냥 몸치다. 불쌍한 나의 몸뚱이여…
운동실력이 이렇게 전반적으로 제로인데 딱 하나 잘하는 것이 있다. 수영. 이것은 곧잘 해서 접영까지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지구력이 있어서 30분 정도는 쉬지 않고 벽 찍어가며 왔다 갔다
정도는 (젊었을 때 문안하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독일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자그마한 수영장에 옹기종기 동동 떠서 개수영하던 독일 사람들이 우스워 보였다. 이런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같이 수영하는 것이 조금 뭐랄까…모욕적이란 생각까지 들었었다. 수영모에 멋진 수경 딱 갖추어 쓰고 각 세워서 줄지어 올림픽 선수들처럼 수영을 하는 한국의 수영장이 자주 그리웠다.
애들이 초등학교에서 수영을 배우면서 자유영과 배영은 배우는 둥 마는 둥하고 서바이벌 수영에 올인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불만이었다. 휴가에서 물가에 둥둥 떠서 첨벙첨벙 오리처럼 노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얼렁 방학 때 한국 데려가서 폼나게 올림픽 수영선수 같은 폼이 되도록 수영을 가르치리라 결심했었다.
애들이 좀 크고 난 후 수영장도 아니고 모래사장도 아닌 절벽 해안가로 휴가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서바이벌 개수영을 배운것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애들도 남편도 (절벽 해안으로) 휴가온 유러피안들은 물에 대한 공포가 없다. 숙소 앞 펼쳐진 물속에 뛰어들자마자 바로 3-5 미터 깊이이고 조금만 수영해 나가면 그냥 10미터 바다가 되는데도 스노클을 끼고 자유자재로 5미터 바닥까지는 들고 날고 한다.
이번 휴가에서 크로아티아 바닷가 절벽에서 서너 살도 안된 애들을 수영시키는 것을 보며 바다수영 조기교육의 끝판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다리가 아프셔서 잘 걷지 못하시는 노인분들도 지팡이를 짚고 해안절벽까지 힘겹게 걸어오셔서는 절벽 언저리에 지팡이를 조심스레 올려놓으시고 물속에서는 인어처럼 수영하신다. 크으~~~
우리나라에도 바닷가 근처에서 자라거나 제주에서 자란 분들은 이런 수영에 익숙하리라. 도시에서 자라 수영은 수영장 바닥이 훤히 드러난 데서 수영모 쓰고 배운 나에게는 광활한 바다 수영은 사실 공포스럽다. 서당개 3년하고 나니 이제 많이 나아져서 조금씩 조금씩
바다와 친해져 가 제법 바다 수영을 하긴 하지만 아직도 해가 살짝 가려져 바닷속이 검게 보이면 공황이 발생해서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멀쩡히 수영을 할 수 있는데 왜 바다수영은 아직도 공포스러울까… 수영을 배울때 사용하기 위해 배우지 않아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다. 운동의 한 방법으로 배웠을 뿐 이것이 생활에서 쓰이는 아주 유용한 라이프 스킬이라는 마인드 셋을 장착하지 못해서 그런가보다.
다 잘할 수는 없으니 다음 여름 휴가에는 K여인의 우아한 수영법을 자랑하러 큼지막한 수영장으로 휴가를 가야겠다. 독일 식구들은 오리처럼 수영하게 놔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