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키친인가 실험실인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쿠킹의 현장

by 문맹

독일 쿠킹쇼는 마치 월드컵 파이널 게임이나 되는 것처럼 치열하고 경쟁적인 것이 많다. 대결을 하는 쿠킹쇼가 커다란 인기를 끌어서 미슐랑 셰프들이 수습생들이나 셀럽들과 함께 주어진 과제를 빠듯하게 정해진 시간 내 수행하고 또 다른 스타 셰프들에게 냉정하고 적나라하게 맛을 평가받거나 하는 식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남의 요리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의 한 부분이다.


매일 수업에서 재미없는 공부에 지친 학생들을 채찍질하고 달래 가며 긴박하게 어젠다를 처치해 나가며 일하는 나는 퇴근하고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웃게 해주는 예능프로나 귀여운 동물, 사랑스러운 아가들을 덕질하는 것으로 그날 달아오른 김을 뺀다. 난리통에서 경쟁하는 독일 쿠킹쇼를 보는 것은 스트레스 유발인자이기에 노 땡큐다.


반면 퇴근 후 쿠킹쇼와 다큐를 보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우리 집 독일 아저씨는 자의 반 타의 반 은퇴 후 쿠킹쇼에 더 열광하게 되었고 쇼에서 본 것을 우리 집 부엌에서 그대로 실습한다 - 남편이 부엌일을 전적으로 맡게 되었을 때 이 염려를 안 한 것은 아니다. 뭐든지 중간은 없는 우리 집 아저씨가 쿠킹에 그대로 올인하리라는 것은 짐작했으나 미리 두려워하고 싶지 않기에 애써 외면했다. 불 보듯 뻔한 앞일을…. 같이 근 20년 살면서 그의 행동에 아직도 매번 두려워하고 놀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하며.

남편은 취미도 특기도 요리다. 문제는 분명히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데 요리하는 모습은 전장을 지휘하는

장교가 마치 수십 명의 병사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것 같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스파게티면을 냄비에 좌르륵 (360도 골고루 퍼져야 한다) 던져 넣고 타이머를 돌리고 눈앞에 있는 마늘이 어디 있냐를 외치며 바로 찾은 마늘을 도마 위에 타닥 얹어 다다다당 다듬다가 타이머가 울리면 우당탕 냄비 뚜껑을 열어 면이 알텐테인지 확인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 닫기를 수십 번 해가며 이미 해놓은 요리가 단 1도도 식지 않도록 전자레인지에 미리 빈접시를 데우고 소스와 면이 동시다발적으로 끝나서 테이블에 동반입장해줘야 한다.


이렇게 전쟁통을 방불케 시간을 맞춰가며 코스별로 때르릉 때르릉 타이머를 차례로 울려가며 요리들은 테이블에 도달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가 막히다. 종종 아이들과 함께 요리하기를 즐기는데 그럴 때 보면 애들이랑 화재 현장에 나선 소방관처럼 요리를 한다. 소리 지르고 진격하고 같이 긴장했다가 오븐 열어보고 기뻐하고.. 웬 요리에 감정과 열정이 이리 들어가는지 보고 있으면 스포츠 경기 한 판 뛴 것 같이 숨 가쁘다.


베이킹은 더 하다. 한 치의 오차 없는 계량과 오븐 타임 및 온도 맞추기… 애들이 어렸을 때는 사탕 만들기도 도전했었는데 사탕이 액체에서 고체로 되는 시간은 순간이고 이것을 맞추기 위한 법석 떪은 거의 제임스 본드 007 작전 저리 기라였었다.


요리를 과학으로, 레시피를 무슨 종교법전 마냥 한 치의 오차 없이 따르는 방식으로 하다 보니 음식은 정말 맛있지만 나보고 같이 음식준비 하자면 오싹해진다. 부엌에서 최소 전쟁영화 한 편 보는 것 같은 긴장은 각오해야 해야 하기에…

별것 아닌 소시지를 그릴 할 때에도 타이머를 맞추어 그냥 뒤집는 것이 아닌 각도별로 굴리면서 굽는다. 난대충 구워서 빨리 먹고 싶은데 - 배가 고파지면 화가 나는 행그리 (영어에 hungry와 angry를 짜부시켜 만든 말) 현상이 내게는 자주 일어나는데 앵글 맞춰가며 똑같은 시간으로 구워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을 그릴로 밀어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소시지 빨리 주라. 같이 구워버리기 전에…)

얻어먹는 주제에 참는 게 마땅하겠으나 때로 말려들어 함께 음식 준비에 참여하게 되면 만만치 않은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초의 어김 없이 계획한 그대로 음식이 준비되어야 하기에 도우미는 영혼이 탈탈 털린다.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나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요리못알이 아니던가. 맛있는 음식을 거저 얻어먹고자 하는 자. 요리사의 난동을 견뎌라.


이제 독일식 저돌적 요리 프로그램을 못 보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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