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아빠일까?
"딸이네요."
"......."
'내 딸을 건드는 놈들은 가만두지 않겠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내 삶은 아이의 성별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아내는 임신 전부터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딸이길 바랐다. 반면, 나는 딱히 기대하는 성별이 없었다. 그저 건강히 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의식 중에 아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나는 형제가 있다. 아들만 있는 집에서 자랐기에 일종의 기본값이 그랬다.
더하여 갈수록 험악해지는 세상에서 아들이 그나마 덜 걱정스러울 것 같았나 보다. 딸이라고 해서 실망한 건 아니지만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아내와 딸을 잘 지킬 수 있을까?'
흔히 아빠는 슈퍼맨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때가 있다. 그런데 아내가 생겼고 이제 딸이 생겼다. 내겐 너무나 소중하기에 지키고 싶은 존재다. 특히, 부모의 돌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아이를 보면서 최소 20년은 널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는 요즘이다.
아이가 백일 전까지는 내 부모님이 여아라서 조금 낯설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또 옛날 사고방식이 있으니까 아들이 아니라서 아쉬우신가 했는데 완전한 기우였다. 두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는 요즘 손녀의 애교에 푹 빠지셨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나로서는 정말 다행이다.
40대 초반인 상황에서 아이를 더 가질 마음이 사라졌다. 20대에는 아들 둘, 딸 하나를 그리기도 했다. 나는 형제 사이가 좋은 편이라 여동생까지 있으면 더 좋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기에 자녀는 그렇게 갖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상황이 달라졌다. 남매, 자매가 있다고 모두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결론은 자식 하나라도 잘 키우기.
나는 아이가 대학교 입학할 때쯤 환갑이라 이따금씩 아찔하다. 당장을 살아가기도 빠듯하지만 우리 부부의 노후도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둘째 생각은 없다. 아이가 외동이라도 부모의 사랑을 오롯이 전해준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걱정은 있다.
나이 때문인지 지인의 조사에 다녀올 일이 많아진다. 특히나 부모상인 경우 슬픔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혈육의 존재감이 크게 보인다. 훗날 나와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딸은 어쩌지... 걱정이 몰려온다. 그리고 혼자 괜히 슬프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 슬퍼하지만 말고 나름의 대안을 생각하고 있다.
일단 부모로서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 살기. 아이가 회자정리의 세상 이치를 깨달을 때까지는 살고 싶다. 최소 80세 정도? 그래서 건강 관리에 더 신경 쓰고 있다. 몸에 좋은 영양제나 보양식을 챙겨 먹고, 좋아하는 탄산음료를 제로로 바꿨는데 최근에는 아예 자제하고 있다. 초콜릿 같은 달콤한 간식도 예전에 비하면 확연히 줄였다. 음주도.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다. 그래도 빠른 시일 내 어떻게든 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나와 딸 사이 40년가량의 절대적인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우리가 먼저 떠나더라도 함께할 옆지기가 필요하다. 내 딸은 분명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귈 것이다. <술꾼도시여자들>의 한선화처럼 잘 챙겨주는 친구도 좋고, <남자가 사랑할 때>에 나오는 황정민 같이 듬직한 친구라면 좋겠다. 아마도.. 내 딸을 건드는 놈들 중에 그나마 괜찮은 놈을 밀어주는 게 마지막 대안일 듯하다.
훗날의 일이다. 지금은 아빠가 널 지켜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