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여러 은사님을 모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중에 한 분은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십니다. 죄송하게도 성함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술'과목을 가르치셨는데, 아마도 당시 선생님은 지금 제 나이보다 어리셨을 듯합니다. 선생님을 제가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수업이나 대화 같은 직접적인 사건보다 여름방학에 제게 보내주신 편지 때문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여름 방학 과제로 선생님께 보낸 편지의 답장인지, 선생님께서 제게 편지를 보내셨는지.. 편지를 받은 배경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학교는 한 반에 50명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모두 편지를 보내셨다면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을 게 분명합니다.
편지 내용 중에서 선생님께서는 제가 뭔가 쫓기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으셨다면서(돌이켜 보니 15살 소년에게 너무 팩폭을...) 앞으로는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써주셨습니다. 뼈를 제대로 맞아서인지 그 후로 일정에 쫓기는 상황이 오면 선생님의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에휴.. 열다섯 살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네..' 하면서 말이죠.
쫓기는 버릇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개선이 되었습니다. 혼자서 쫓기는 것까지는 견뎠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까지 애먼 고생을 시키는 것은 정말 마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은 준비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성격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미리 생각해 보기도 하지요. 물론 즉흥적인 성격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아서 여전히 그날그날 빵꾸를 때우는 날도 있습니다. 하핫..
그런데 '쫓기는 삶'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을 준비할 수는 없을뿐더러 준비만 하다 보면 현재를 즐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 인생은 역동성(운이나, 운명으로 부르기도 하는)이 가득해서 우리가 준비하고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더 많지요. 그래서 때로는 경로 이탈이 멋진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잘못탄 기차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만약에 지금 제가 열다섯 살 제 자신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은 중요하다고. 준비를 못할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현재를 직면하고 즐기는 마음을 가지라고. 쫓기는 삶의 반대는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즐기는 삶이 아닐까 싶다고.. 말이죠.
Small things of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