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 근처 피트니스 센터를 다녔습니다. 퇴근 후 운동을 하고 나면 산발 머리에 발그레한 볼까지.. 꼭 동네 편의점 나온 것 같은 모양새로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요즘에 퇴근길엔 전화영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서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열심히 통화를 합니다.
얼핏 봐도 꽤 부끄러운 상황입니다. 실제로 영어 선생님은 제가 지하철에 있다고 하면 '다음에 수업할래?'라고 먼저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추레한 모습이나 영어수업이 별로 부끄러운 적은 없습니다.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도 저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저 역시 지난 십수 년간 통근길에서 만난 사람 중에 기억나는사람이거의 없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분명 순기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선 필요이상으로 멀쩡해(?) 보이고 싶어 하면서, 항상 매일 만나는 배우자 앞에선 조신하게 행동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기억하는 사람, 매일 만나는 사람 앞에서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야 하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다고 집에서 정장을 입고, 교양을 떨자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사람들을 중요하게 대하자는 겁니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옷 고를 따 쓰는 에너지마저 줄이려고 항상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하죠.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딘가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면 어딘가에선 에너지를 쓰지 못하게 됩니다.
체면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남 눈치 안 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더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