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면서
많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왜 그동안 나는 연재를 미뤄왔던 걸까.'
그건,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면,
필히 다시 마주해야 하는 장면 앞에서
엉켜있는 복잡한 감정들이
나를 엄습할 것만 같은 공포..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정들은 크고
다가가기에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퇴사 직후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게 된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퇴사라는 선택을 하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으며
주저했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즈음의 나는
퇴사를 후회했고
그런 선택을 한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40대 엄마이자 직장인이었던 나.
안정된 삶이 아닌 도전을 선택한 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선택이었고
그런 나는 아이들에게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나쁜 엄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생각 이면에는
마음속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
퇴사를 하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평일 아침.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고 집에 혼자 남게 되면,
이젠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홀가분함과 동시에
무능하고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고,
스스로 조직에서 나왔지만 동시에
사회에서 내쳐진 기분이 들어 울적했다.
이 양극단을 오고 가는 기묘한 방황은
마음의 평화를 찾아 열심히 명상을 하면서도,
돈을 벌지 못해 한심한 나를 견디지 못해
경매스터디를 기웃거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나'로 존재해본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 직장인이었고,
등수로(요즘으로 말하면 등급으로)
연봉으로,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로
타인에게 평가받고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던 것,
나란 사람을 말하던 것들..
안정된 월급, 지위, 조직...
그 모두 포기해 버리니
나는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고,
한없이 작아 보였다.
시릴정도로 작고 투명해진 나와 마주한다는 것.
그건 정말 기분 나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지? 싶을 정도로
두려움이 나를 점령했고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과거에 익숙했던 방식으로...
나에겐 돈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돈이 나의 모든 두려움을 해결해 주고,
잃었던 자존감과 인정도 되찾아줄 거라 믿음.
돈이란 것이
초라하고 부끄러운 나를
번듯하게 위장해 줄 거라 생각했고,
돈이 된다 싶은 곳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았고
마음은 공허로 가득 차게 되었다.
퇴사를 했지만
직장 다닐 때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또다시 무의미와 공허가 정점을 찍었을 때
두려움 때문에 하던 모든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냥 초라한 이대로 있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돈 버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나는 예전부터 텃밭농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직접 작물을 가꾸고
수확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지금이 적기라 생각했고
그렇게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초보 농사꾼에게
텃밭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는 것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는데,
이상하게(?)
실패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흙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비로소 나라는 사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나는 듯했다.
태양과 바람과 흙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아무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듯했다.
그 속에 있노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내 모습, 그 자체로 수용되고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
농사를 망쳐도 아무 상관없던 이유는
그런 느낌들 때문이었다.
태양과 바람과 흙에 둘러싸여
싱그러운 생명을 머금은 작물들을 보면서,
순간순간에 느끼는 행복감이 너무 커서
남들이 '이 집 농사 망했네' 하더라도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삶을 살았다.
성공과 실패라는 성과가
나를 평가했고 내가 되었다.
그래서, 실패는 두려운 것이었고
피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텃밭농사는
모든 일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면서
결과에 연연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사는 삶이 아닌,
과정을 즐기고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대학원에 들어가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남들에게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들통날 텐데...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정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텃밭농사 후 생각이 좀 바뀌었다.
대학원에 가려는 건,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마음속 피어나는 질문들과
치유에 대한 열망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니깐.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텃밭농사때 느꼈던 감정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예상되는 결과나 타인의 평가가 아닌,
오직 내 질문에 대한 갈망으로
대학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1년여의 방황이 끝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