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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는 날의 기억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가족이 모이는 자리

by Jake Shin



“조금 늦은 걸음에도 따뜻함은 기다려줍니다”


어제는 처갓집 김장하는 날이었습니다.

일찍 도와드리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나설 준비를 했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 날도 있지요.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든 사이, 창밖의 빛은 이미 한참 올라 있었습니다.


‘아, 늦었다.’

부랴부랴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처갓집으로 향합니다. 막상 도착하니 김장의 가장 바쁜 손놀림은 이미 지나가고, 김치 속이 정리되는 마무리 단계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김장 뒤풀이로 나온 보쌈과 홍합국을 맛있게 먹는 일, 김장 끝에 쓰였던 대야를 닦는 일 정도였습니다. 분위기는 따뜻했습니다. 김장하는 날에만 맛볼 수 있는 그 푸근한 온기와 막걸리 한 잔의 여유가 말이죠. 이와 더불어 과거 김장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보게 됩니다.




"어린 시절로 건너가는 문"


김장의 풍경을 보면 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저는 김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그저 어머니가 “오늘 김장하는 날이야”라고 말하면 어김없이 ‘뭔가 큰일이 벌어지는 날’이라고 느끼던 아이였습니다.


저희 집은 연립주택 단지에 살았습니다.

작은 마당이 드문드문 있는 동네였고, 집들 사이에는 서로 오가며 돕는 정이 살아있었습니다. 요즘처럼 각자 집 문 앞에서만 인사하는 관계가 아니라, 마치 확장된

가족처럼 서로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이웃들이었지요. 김장철이 되면 이웃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골목 여기저기에서 들렸습니다.


서로의 집에서 김장을 하고, 또 다른 집으로 넘어가며 “오늘은 이 집 도와주고, 내일은 저 집 가서 하고”라며 품앗이가 당연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땅속에 묻던 김장독 – 겨울을 견디는 가족의 저장고"


김장을 하고 난 뒤에는 늘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김장독을 땅속에 묻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김치냉장고가 흔하지 않던 시절, 땅속은 가장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냉장고였지요. 연립주택 단지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배수로 근처와 집들 사이사이에 작은 흙밭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 김장독을 묻곤 했습니다. 아이였던 저는 어른들이 김장독을 묻는 모습을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어른들의 손길에는 ‘이 김치가 몇 달 동안 우리 식탁을 책임지겠지’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고,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인 저는.‘집이라는 곳은 사람들의 땀과 마음이 함께 저장되는 곳’이라는 감각을 조용히 배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 서리 이야기 – 동네의 어둠과 사람의 결도 함께 배우다"


그러나 언제나 순탄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겨울, 동네에서 김치 서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누군가 땅에 묻힌 김장독을 파헤쳐 김치를 훔쳐 간 것이었죠.


어른들은 속상해하면서도, 그 사람의 사정을 조금은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요즘 형편이 어려웠다더라”

“그래도 김치를 훔치는 건 아니지…”

그런 대화들이 오갔습니다.


그 무렵 저는 처음으로‘사람의 삶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생계였고, 누구에게는 겨울을 버티는 힘이었으며, 누구에게는 훔쳐서라도 얻어야 하는 절박함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동네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후에도 우리의 김장은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계절은 지나가고, 사람의 마음도 다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하루 – 김장이라는 이름의 큰 행사"


김장철이면 동네 아줌마들이 서로의 집을 돌며 김장을 도왔습니다. 어머니도 그 한복판에 계셨지요. 아침부터 배추를 씻고 소금을 치고, 커다란 고무대야에 양념을 버무리고, 이웃집에서 “조금만 도와주세요”라고 부르면 일손을 흔쾌히 내미셨습니다.


아이였던 저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바빴고, 늘 누군가의 부탁에 응했고, 또 늘 집으로 돌아오면 묵묵히 밥을 차리셨습니다.


"점심식사는 작은 축제였다."


김장하는 날의 점심은 항상 풍성했습니다. 어머니와 이웃들이 모여 “오늘은 이 집에서 먹자”“내일은 저 집에서 먹고” 하며 음식들을 펼쳐놓았습니다. 막 버무린 김치 한 조각 위에 뜨끈한 밥을 올려 먹던 기억은 지금도 입안의 뜨거움과 함께 분명히 떠오릅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다른 부러움이 없었습니다.


"목욕탕에서 쉬다 오시던 어머니"


김장을 마치고 나면 어머니는 늘 “목욕탕 좀 다녀올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장이라는 대작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주는 작은 휴식이었겠지요.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씻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 돌아보면 ‘한 해를 닫는 작은 의식’ 같았습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 처갓집에서의 김장날"


그리고 어제,

저는 그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처갓집 앞에 섰습니다. 일을 많이 돕진 못했지만 보쌈 한 점에 홍합국 한 숟가락,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이 몸을 따뜻하게 적셨습니다. 장모님은 “왔으면 됐지”라고 웃어주셨고, 처남과 처제들도 농담을 건네며 분주했던 하루의 흐름을 풀어냈습니다.


김장이라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노동이지만 저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이더군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느꼈던 그 정서와 동일한 온기가 처갓집 식탁 위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김장이 만들어내는 가족의 끈"


김장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가족이 모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한 해 동안의 고마움과 노고를 나누는 일입니다.


어제 저는 많은 일을 돕지는 못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 가족의 일원으로서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김장은 음식의 계절이 아니라 관계의 계절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만든 김치를 앞으로 몇 달 동안 식탁 위에 올리며 그때의 웃음과 온기를 다시 떠올리겠지요.




"김장이 남긴 따뜻한 여운"


김장하는 날은 늘 강한 이미지로 남습니다.


손끝이 얼얼해지는 한겨울의 공기,

막 버무린 김치의 향,

보쌈의 기름기와 홍합국의 시원함,

그리고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웃음소리.


어제의 김장은 일손을 많이 보태지 못한 아쉬움보다 가족들과 다시 한번 따뜻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풍경과 어머니의 바쁜 손길이 생각나고,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든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저는 김장하는 날이면 가족과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는 겨울의 선물이 되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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