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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러 Jul 15. 2022

책 이야기 28.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지음


바쁜 일이 지나간 후의 여유를 모처럼 즐기자는 마음인지, 계속 책을 찾게 됩니다.


또한 '휴남동 서점'의 여운 때문인지, 이번에도 소설을 집어 들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을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청파동, 서울역 등 소설 속 지명이 현실과 똑같아 마치 머릿속 지도를 펼쳐가면서 이야기를 따라간 느낌입니다.


마침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오래전 청파동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어 자주 놀러 갔는데, 소설 속 편의점이 그때 그곳 언저리에 위치한 것 같아 이 소설은 꽤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은 편의점 사장 염영숙 여사의 파우치 분실과 그것을 찾아준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의 우연한 관계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전개 방식은 옴니버스 형식이라고 하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편의점의 오전, 오후, 야간을 책임지는 아르바이트 직원 및 염 여사와 그녀의 아들 등 편의점과 관계되는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각 에피소드로 펼쳐지는데, 우연한 계기로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게 된 '불편한' 사람 독고 씨의 선한 영향을 통해 각각의 에피소드는 따뜻하고도 희망 섞인 내용으로 마무리됩니다.


독고의 권유로 유튜브에 올린 편의점 바코드 사용법 덕분에 편의점 점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인생의 항로를 새롭게 수정한 공시생 희수 / 아들에게 삼각김밥과 편지를 건네보라는 독고의 제안으로 아들과의 틀어진 관계가 개선된 오 여사 / 아내와 자녀들로부터의 소외감을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으로 달래던 경만에게 술 대신 옥수수수염차를 제시한 독고 덕택에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는 경만 / 낭떠러지에 이른 희곡 창작자로서의 삶을 독고로 인해 되바꾸는 인경 / 독고를 염탐하다가 오히려 독고 덕분에 야간 알바를 맡게 된 흥신소 소장 곽 씨 등 이처럼 모든 이야기는 독고의 뜻밖의 제의와 그 영향으로 행복한 결말로 이뤄집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교사 퇴직연금으로 은퇴 생활을 하는 편의점 사장 염 여사의 넉넉한 품성과 포용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숙자 독고를 자신의 편의점 알바로 채용하는 관심과 안목 덕분이죠.


그리고 마지막은 의료사고와 가족의 해체에 따른 정신적 트라우마로 기억을 잃어버리고 어눌한 채 4년 동안 노숙자로 살아온 독고 씨의 이야기, 그리고 의료사고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깊은 속죄와 삶의 희망으로 다시 생을 시작하고자 하는 독고 씨의 새출발로 '불편한 편의점'의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마음을 채우고 뭔가 따뜻하고 든든하게 하고픈 본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읽었던 소설인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그리고 이번 '불편한 편의점' 모두 읽고 나서 잔잔한 감동과 따스함이 느껴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세 소설 모두 최근 몇 년간의 우리 사회상을 담은 모습 때문인지 이야기가 더없이 와닿았습니다.


어느덧 취준생과 알바의 대명사가 된 듯한 20대, 어렵게 직업을 구했지만 각박한 삶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뒤늦은 방황에 빠지는 듯한 30대, 그런 30대도 겨우 넘겼지만 갈수록 어려워만가는 주변 환경 탓인지 가정에서도 뭔가 삐거덕거리는 듯한 40대와 50대 등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힘겨움이 담겨 있어 안타까움과 함께 주변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세 소설은, 그럼에도 사람이라는, 그럼에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라는 점을 비춰주고, 또 그 속에서 피어나는 따스함과 희망을 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들 어렵고 힘들다 보니 저 역시 그렇듯 하소연과 푸념이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헬조선'이라는 비관이 우리 모두를 감싸는 건 아닌지 안타깝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안톤 숄츠가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이방인적 시선과 비판적 인식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고, 또 그가 우리에게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새롭게 던져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행복과 관련하여 좀 더 자기 가치관을 중심으로, 좀 더 희망적 시선과, 좀 더 길고 너른 태도로 나아가자는... (물론 '이상한 행복'에 대한 제 개인적 소감일 뿐입니다.)




소설을 연이어 읽다 보니 서서히 머리가 그쪽으로 발달되어가는 듯합니다.


이제는 등장인물들의 특성을 하나하나 뽑아내지 않아도 대체로 또렷이 기억이 나기에 그런 듯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설의 내용 이외에도 그간의 읽은 책들이 한꺼번에 뭉뚱그려져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떠올라 두런두런 소감을 적어봤습니다.


문체도 좀 달리 하여.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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