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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 (2024)

도파민은 이렇게 터지는 거구나요?

by 원일


오늘은 순서를 조금 바꿔서, 그나마 최근에 본 영화 하나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번에 이야기 할 영화는 작년 4월 국내 개봉했던 챌린저스다. 이 영화는 개봉이 계속 미뤄졌던 작품인데, 기대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마침 이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개봉주에는 극장에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안 보면 정말 극장에서도 집에서도 못 볼 것 같아서, 근로자의 날 전날에 급하게 보고 왔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여전히 '몸'이라는 테마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챌린저스에서도 그는 테니스라는 스포츠를 단순한 경기로 보여주지 않는다.
근육의 움직임, 땀이 맺히는 피부, 숨을 내쉬는 타이밍, 라켓을 쥔 손의 힘줄까지 몸이 감정을 대변하는 순간들을 아주 집요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포착한다.

카메라는 자주 클로즈업으로 몰입시키고, 때로는 슬로우 모션으로 감각을 늘리고, 또 한순간엔 과감하게 속도를 끌어올리며 보는 사람의 호흡을 통제한다. 여기에 EDM 리듬이 얹히면, 그 감각은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이야기 흐름에 따라 음악과 이미지가 서로를 밀어 올리듯 터져 나오고, 그 자극은 꽤 중독적이다. 이 영화는 그냥 자극적인데, 동시에 은은하게 뭔가에 취한 느낌을 준다. 진짜 도파민처럼 팡팡파라팡팡 터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감각적인 영상미에 머무는 건 아니다.
세 사람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얇은 줄 위를 걷는다.
사랑과 질투, 경쟁과 연민, 그리고 그 안에 얽힌 권력과 자존심이 테니스 코트 위에서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구아다니노는 이 감정들을 과장하지 않고, 대신 아주 밀도 높게 쌓아올린다. 그래서 셋이 한 공간에만 있어도 긴장감이 흘렀고, 대사가 없어도 감정이 충돌하는 순간들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 무게를 제대로 지탱해준다. 젠데이아는 타시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매혹적이고, 냉정하고,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인물인데, 그 복잡한 결을 젠데이아는 놀라울 만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조시 오코너와 마이크 파이스트 역시 인물의 심리를 정확히 짚어낸다. 이 둘은 극 중에서 끊임없이 대립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감정을 보여주는데, 그 균형이 참 묘하고, 그래서 더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이건 단순한 스포츠 영화도, 단순한 삼각관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라는 프레임 안에 관계의 권력 구도, 사랑과 증오의 감정선, 그리고 '승리'에 대한 각자의 욕망이 절묘하게 얽혀 있다. 너무 날카롭게 표현돼서 도망칠 틈이 없게끔 만든다.

특히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말보다 앞서는 몸의 움직임, 그리고 코트 위에 서 있는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 결국 이 영화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지배하고, 어떻게 놓지 못하고, 결국 어디까지 가는지를 묻는 이야기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챌린저스는 보는 내내 짜릿하고, 다 보고 나서는 묘하게 씁쓸한 감정을 남기는 영화였다. 아주 강한 도파민의 순간들과, 그 끝에 남겨진 진짜 공허함까지.
이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그 극단적인 대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왠만한 아침드라마보다 더 도파민이 터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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