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단호한 거절
지난주, 전 회사의 후배를 만났다. 전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부서는 나와 아주 아주 다른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었는데, 그녀는 유독 나와 말이 잘 통하는 후배였다. 그리고 내 지인 중에서 이 브런치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직하면서 급변한 나의 스타일에 대해, 옛 직장의 현황과 새 직장의 현황과 차이에 대해, 그녀의 고민과 나의 고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간이 깊어지면서, 나의 독일 여행과 짧았던 연애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녀와 나는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어리지만 일찍 결혼을 해서 유부 월드에 살고 있었고, 나는 삼십 대가 넘어 솔로가 되었기에 정 반대의 위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였다. 그녀는 나의 이상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몇 번 소개팅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그랬기에 내 독일 여행 이야기에 누구보다 공감해주면서, 또 안타까워해 주었다.
독일 여행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 내가 말했다.
"그 연애 이후로 저 이제 이상형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엥, 어떻게요?"
"작년엔, 긴긴 연애에 지쳐서 인지 막 가슴 뛰고 열정 넘치는 사랑을 원했어요. 근데 그런 사람을 만나보니까, 참 힘들더라구요. 내 에너지가 그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좋게 말하면 독립적인, 달리 말하면 조금은 무던하고 착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어요. 자기 삶과 일이 확실히 있으면서, 남은 부분을 서로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사실이었다. 끊임없이 카톡을 주고받고, 매 통화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연애는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그것들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대답,
"선배님, 저 그건 반대예요."
평소 다른 사람의 말에 단호하게 반대를 표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 놀랐다.
"그건, 사랑에 온 마음을 쏟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전 그런 연애는 반대입니다. 여자는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남자가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로 사는 거거든요. 자기 할 일 다 하고, 남은 에너지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호한 그녀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어찌 여자만 그렇겠는가. 사랑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일이 내 삶의 50을 차지한다고 해서, 나머지 50으로 사랑을 하려 했다.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사랑은 언제나 100으로 하는 것.
그리하여 내 삶의 지평이 150으로 넓어지는 것이야 말로 사랑의 기적이 아닐는지.
"그건, 반대입니다."
그녀의 단호한 거절이, 내 마음을 다시금 차오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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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에 조금은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또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징징대 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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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대상 출간, <서른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