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24화
아내가 독일에 한 달 살기를 하러 간다고 했을 때,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그 한 달의 체류 기간을 위해서 독일어를 틈틈이 익혔습니다. 그렇게 단시간 배웠음에도, 현지에서 간단한 회화 아니 그 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회화를 구사하는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재학 시절,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던 기억이 났습니다.
사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생각해 보면 아주 작은 로망이 있었는데,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의무 교육으로 영어를 배운 후에,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기분은 마치, 영어로 꽉 차버린 두뇌에 약간은 휴식(?)과, 환기를 시켜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드물었던 남녀공학에 다녔는데, 남학생들은 독일어, 여학생들은 불어와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약간의 선택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초등학교 때, 일본에서 오래 살다오신 이모님께 일본어를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모부께서 와세다 대학원을 졸업하셨는데, 그때 쓰셨던 와세다 대학의 일본어 교재가 학습에 좋은 교재라고 하셔서, 무려 '대학생들이 배우는' 일본어 교재로 아주 잠시나마 배웠던 일본어가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경험을 이어 일본어를 배우고 싶었으나,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독일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독일어를 너무 갑자기, 준비(?) 없이 만나다 보니, 이 언어를 내가 왜 배워야 하는지 잘 몰랐고, 또 일상에서 접하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독일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영어를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데, 독일어 발음은 더욱 쉽지 않았고, '움라우트' 등의 생전 처음 보는 부호들 또한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저에게 독일어를 배워야 하는 동기는 바로 '중간', '기말' 시험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수능에는 제2외국어가 등장하지 않았기에, 수능을 목표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점에 감사했습니다.
시험 위주로 공부를 하다 보니, 뭐든 '속성으로', 보다 현실적인 표현으로는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제게 머릿속에 독일어는 그저 제가 '배웠었다.'라는 뭔가 이정표와 같은 기억만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2외국어를 왜 고교 교과목에 넣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자라나는 우리들에게, 세상에는 영어가 전부가 아니라, 다른 외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하고, 그 세상으로도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어쩌면 꿈보다 해몽인 '기획 의도'를 떠올려 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의도와 더불어, 이 외국어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잘 설명을 해주고, 설득을 하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 그때 독일어 선생님도 이 동기 부여를 해주시려고, 설명을 해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마 그 시절의 제가 너무 철이 없어서, 그를 기억조차 못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 주재 시절, 어떠다 자녀를 둔 교민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자녀 분들이 중국어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속상하시다고 했습니다. 국제학교에 넣어서 영어는 잘 받아들이는데, 중국어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입니다. 영어나 일본어 콘텐츠들에 비해 중국어 콘텐츠들에 호감을 느끼지 못하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란 저 또한 보편적인 만다린어보다는 칸토니즈라고 불리는 광둥어에 더 매력을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보니,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동기 부여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네요. 그 언어가 지닌, 매력에 눈을 뜨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독일어가 지닌 매력을 아내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저 흘려보냈던 독일어 시간이 아쉽습니다.
영어는 참, 놓으래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저의 직업이 영어를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어의 가장 큰 동기 부여 그것은 매력이고 뭐고가 아니라, 바로 밥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