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떠돌던 송길용 씨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거리에서 17살 딸아이가 웃고 있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야'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는데, 어머니도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혜희를 기억해 줄 사람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마음 안쪽의 뼈마디가 시렸다.
"사랑하는 내 딸 혜희야!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아빠는 너 한번 만나보고 죽는 게 소원이란다. 꼭 살아만 있어 다오……"
나는 아들이 두 명 있다.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기분으로 큰아이를 키워서 20년 만에 육지에 내려놓았는데, 이제는 다시 작은 아들을 태우고 대서양을 건너고 있다. 뜨거운 태양, 태풍과 폭우, 거센 파도가 이젠 익숙해졌다고 믿었지만, 위력은 줄었어도 사춘기의 바다는 여전히 맵고 짜다.
중학교에 가더니 핸드폰 관리 프로그램을 없애달라고 주1, 2회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는 둘째. "너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사용 제한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핸드폰에 중독된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너를 어떻게 믿니?'라는 마음이었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둘째가 학교에서 체험 학습을 갔다. 가기 전부터 친구들과 의논할 것이 많다고 며칠만 핸드폰 관리 프로그램을 중지해 달라고 목소리 높여 부탁(?)하길래, 성가셔서 그렇게 해줬다. 체험 학습을 떠난 날, 자고 오고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금단 증세에 시달렸다. 핸드폰 사용 시간도 못 보고, 위치 파악도 안 되니까 아이야 좋았겠지만 나는 왠지 불안했다. 퇴근하고 집에 왔지만, 둘째는 친구들과 더 논다는 문자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이를 기다리며 습관적으로 예전 핸드폰 사용 기록을 열어보았다. '사흘 전엔 인스타를 1시간 했네. 나흘 전에 게임을 1시간 반이나 했네.' 혼잣말하며 화면을 넘기다 보니, 송혜희 양의 아버지가 다시 생각났다. 25년 동안 커다란 바위 하나를 가슴 속에 넣어두고 살았던 그분의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내가 느낀 모래알 정도의 답답함으로도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故 송길용 씨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아이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SNS에 시간을 허비하고 게임을 많이 한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그 기록이 아이가 활동하고 있는 신호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직 어린 둘째가 보내고 있는 생명 신호를 매일 느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둘째를 다른 육지에 내려놓고 돌아설 때가 되면 참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추석 연휴 때는 더욱더 그런 마음으로 조바심을 없애면서 눈앞에 있는 파도를 슬기롭게 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