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다는 생각도 없이 줬다는 기억도 없이 타인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어른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들까? 요즘 인기 역주행 중인 <어른 김장하>을 보기 전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정치를 할 셈인가, 명예를 얻기 위함인가, 종교나 어떤 이념의 실천을 위해서인가?' 다큐를 보면서 이런 불순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작년에 백상예술대상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지만, 보지 않은 이유도 뻔한 선행 이야기 같아서였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서야 김장하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의문이 거의 다 풀렸다.
다큐를 본 것뿐인데 자꾸 김장하 선생님이 떠올랐다. 멍때리는 병에 걸린 것처럼 며칠 동안 그분의 삶을 반추해 보니 어설프지만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분의 특별함은 돈보다 시간을 쓰는 방법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의 시간은 크게 돈을 버는 시간, 돈을 쓰는 시간,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위해 충전하는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세 가지 시간이 자신과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알차게 돈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조금 특별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잠시 짬을 내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돈과 시간을 낸다.
그런데 김장하 선생님은 달랐다. 돈을 버는 시간도 타인을 위해 썼다. 진주는 물론 먼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한약을 지어 팔았다. 그렇게 박리다매로 큰돈을 벌었지만, 환자들의 말에 경청하면서 돈을 버는 시간도 거의 다 타인을 위해 썼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쓰는 시간도 크게 떼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부르는 장소에 달려가 자리를 지켰고 좋은 말을 전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학비를 대주는 것은 기본이었고, 아예 통크게 사립 고등학교를 운영하다 국가에 헌납했다. 그후에도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 흔쾌히 돈을 주었고, 꾸준하게 지역의 시민단체와 문화예술 단체를 후원했다.
그래서 김장하 선생님은 무엇을 얻었을까? 남들에게 돈과 시간을 퍼주는 남편과 아버지를 보며 다른 가족들은 원망하지 않았을까? 이런 속물적인 생각을 '귀한 시간을 들여'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러웠다. 이미 '작은 김장하'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기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나는 나눠줄 돈이 적으니, 시간이라도 잘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직장에 있을 때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의 시간을 내어주고, 직장 밖에서도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적은 돈이라도 나누고 시간은 더 많이 보태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시간이고, 결국 곁에 남는 것은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