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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수샘의 장이불재 Nov 19. 2024

한강 소설 <희랍어시간> 이야기 3

- 나의 고향은 인수봉, 백운대가 보이는 수유리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 1980년 서울의 봄에 정말 하찮은 사건 하나가 있었다. 현재는 유명한(?)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된 꼬마 한 명이 2살 때부터 살았던 도봉구 수유리를 떠나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를 가게 된 사건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마음껏 뛰놀았던 동네를 떠나게 되어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그 몇 달 전 1979년 말에는 한국 문학사를 빛낼 결정적 사건 하나가 수유리에 발생한다. 바로 한강 작가가 광주를 떠나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 당시에 나는 수유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한강 작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의 백운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곳 수유리 집에서 20대 후반까지 살았으니, 그녀의 문학적 감수성의 토양은 서울의 북쪽 변두리에서 싹을 피우고 자라났다. (수유리는 한민수를 잃은 대신, 한강을 얻었다. ㅎㅎ)




<희랍어시간>의 남자 주인공도 수유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한강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투영된 장면이 많다. 나 역시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를 묘사한 부분을 읽으며 아련한 그리움을 느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에도 이런 바위산이 있었어. 라고 그때는 나는 고백했지. 인수봉과 백운대라는 두 개의 흰 바위봉우리를 올려다보면서 자랐다고. 지금도 모국을 떠올리면, 인구 천만의 붐비는 도시 대신 그 한 쌍의 얼굴 같은 봉우리들이 생각난다고.

내가 자랐던 수유리 쪽에서 북한산을 올려다보면 왼쪽에 백운대가. 오른쪽에는 인수봉이 있어. 실제로는 백운대가 더 높지만, 인수봉이 조금 앞쪽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높아 보이지. 브루넨의 두 봉우리는 그 위치와 약간의 높이 차이, 흰 바위의 생김새와 숲이 우거진 정도까지 흡사했어.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맞닥뜨린 그 친숙한 풍경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


소설 속 남자는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만난 두 봉우리를 보며 북한산을 떠올린다. 물론 그는 소설가 한강의 분신이다. 수유리의 모든 것들은 한강에게 촉촉한 문학적 토양이 되었고, 노벨 문학상으로 피어났다. 골목길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생겨난 우정과 사랑, 질투와 혼란 같은 감정이 가슴에 깊은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태양과 구름처럼 한결같이 한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인수봉과 백운대는 '순수함, 고결함, 영원함' 같은 아름다움의 감각도 일깨워 주었다.


나도 그 두 봉우리를 바라보며10년을 살았다. 하찮은 나와 위대한 한강 작가가 공유하고 있는 인수봉과 백운대의 기억은 평등했다. 그리고 내가 한강 작가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수유리, 그곳이 바로 내 고향이라는 것. <희랍어시간>에 묘사된 수유리의 살뜰한 정경에 내 피와 살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선언하기로 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첫돌이 지나자마자 수유리로 혀 왔다. 누가 내게 고향을 물어보면, 어릴 땐 부산이라고 했다가 차츰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서울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수유리'라고 말하려 한다. 유재석과 응팔의 덕선이, 그리고 한강 작가도 살았던 수유리라고, 크레센도로!


나는 수유리를 떠나고 한강 작가처럼 이사와 전학을 많이 다녔다. (한강 작가보다 한 번 더 많은 여섯 번 전학했다는...) 강서구 목동, 강남구 개포동, 역삼동, 세곡동까지. 나의 10대, 그 10년 동안 나는 바다에 빠져 어렴풋이 보이지만 건질 수 없는 물건처럼 어떤 상실감을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문학에 빠졌고 슬픈 영화와 강렬한 로큰롤을 좋아한 것 같다.


사춘기의 내가 그리워하던 수유리. 지금은 애틋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수유리를 떠올리고 싶다. 그래야 지금의 나를 더 살뜰히 살피고 미래의 나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북한산이 바라다보이는 수유리 뒷산에서 놀 때 나를 둘러싼 감각들을 잊지 못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배가 부르던 아카시아꽃 향기, 언덕 가득 피어있던 진달래의 분홍빛, 너른 바위에 누워 한없이 올려다보던 흰 구름, 여치와 메뚜기 다리가 손바닥을 간지럽히던 감촉, 토끼 발자국을 따라 눈밭을 헤치며 달려가던 겨울 방학...


그곳에서 아기에서 아이로, 소년으로 자라면서 인수봉과 백운대는 나에게 엄마와 아빠 같았다. 때로는 압정처럼 날아와 박히던 불안과 슬픔 속에도 늘 내 곁에 있었던 부모님처럼, 집과 학교 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거기에 있었다. 서로 키 재기를 하고 있는 흰 바위산들, 때론 싸우고 때론 의지하고 있는 봉우리 두 개가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믿게 해 주었다. 아직 허무함, 누추함, 비굴함 같은 말을 모르던 나에게 가장 선명한 아름다움이었다.


-- 수유리의 기억을 담아 예전에 썼던 시, <주민등록초본을 읽으며> 링크도 아래에 올립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s://brunch.co.kr/@googeo4s5z/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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