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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그리움을 기다립니다

by 글쓰는 민수샘

어제는 노트북 수리를 하러 서초동에 갔습니다

잿빛 구름이 8월의 햇살과 숨바꼭질하느라

고속도로 옆 오솔길에는 선선한 바람이 풀 내음을 물고 다녔습니다

자식들을 다 출가시킨 어머니는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생애의 출근을 완납한 아버지는 벤치에서 매미의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큰길로 내려와 걷다 보니 교복을 입고 걸어가는 나를 만났습니다

한 어깨엔 교과서와 문제집을 짊어지고

다른 어깨엔 도시락 두 개를 둘러매고 걷던 길이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오늘은 이 길로, 내일은 저 길로

정처 없이 홀로 걷던 어떤 날의 하굣길이었습니다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대학생 기분을 내던 50대의 나를

멀리서 바라보던 10대의 나는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습니다


노트북을 맡기고 나와 30분에 한 대씩 있는 버스를 타러 다시 그 길을 걷습니다

이렇게 한심한 나도 내일이 오면 그리워질 거라 말해주고 싶지만

그 아이는 학교도 집도 아닌 어느 낯선 골목을 걷고 있을 테지요


내일의 그리움이 오늘의 나를 새기고 있는 소리를 듣습니다

10대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런 사각거림입니다



- 2025년 8월 8일, 글쓰는 민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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