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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뱃속 북레시피 - 『케이크를 만들 거야!』

by 고래뱃속
케이크를 만들 거야! X 하루라는 우연과 장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유는 모르겠지만 ‘빵 굽는 일’에 이상할 정도로 매혹되곤 했답니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퐁신퐁신한 갓 구운 빵을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겠지만, 갖가지 재료들이 합쳐지고, 뭉쳐지고, 새로운 모양으로 빚어지고 구워지면 처음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재탄생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꼭 마법처럼 느껴져서였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아주 특별한 빵을 만들어 볼까 하는데요, 사실 오늘 만들게 될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빵은 아니에요. 그런데 어쩌면 진짜 빵보다 더 달큰하고, 맛있을 걸요. 무엇보다 이 빵을 만드는 과정은 여러분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즐거울 수도 있답니다! 궁금하시죠?


어, 저기 가는 저 꼬마를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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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가 만들고 싶은 오늘의 모양을 상상하는 중이에요. 네, 지금부터 시작되는 하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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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우선 사람들이 있어요.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나를 지켜 주고 있는 부모님이 있고, 어제처럼 반가운 인사를 나눌 선생님과 친구들도 있어요. 거리에서 마주치게 될 낯선 사람들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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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가 해야 할 숙제도 있고, 지루한 수업과 신나는 활동 시간도 있고, 백지상태로 나를 품어 주는 스케치북도, 또 방과 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놀이터도 있어요.

또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이 되었든 나는 오늘 정말 완벽한 하루를 보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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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부터 진짜 하루가 시작돼요.

그런데 잠깐, 학교를 왔더니 수업 시간에 꼭 필요한 준비물을 빠뜨리고 온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옆 반 친구에게 가 빌려 와야 했죠. 그런데 말이에요, 이건 진짜 비밀인데요···

그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그 애를 바로 곁에서 스쳐 지나갔지 뭐예요!

이건 진짜 진짜 비밀인데요··· 그 애에게선 오월의 봄꽃 향기가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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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도 꽃향기가 실려 와요. 눈을 감고 멍을 때리는데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 시간이 됐어요.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노랑 크레파스가 어디로 간 건지 사라지고 말았지 뭐예요? 그 바람에 나는 평소엔 쓰지 않던 크레파스들로 어떤 색깔을 만들면 좋을지 궁리해야 했죠. 한참 고민하다 이것저것 안 쓰던 색깔들을 섞어 쓰기 시작했는데, 웬걸, 그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게다가 다 그리고 난 뒤에 옆에 짝꿍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네 그림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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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따라 이상하게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준비물도 빠뜨리고 가장 아끼는 크레파스도 잃어버린 날인데 말이에요. 그렇게 헤헤거리며 걷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죠. 넘어진 코끝 너머 처음 보는 연보랏빛 들꽃이 살랑거리고 있었거든요.

“아까 그린 그림에 너를 그려 넣으면 무척 잘 어울리겠다.”

나는 생각했지요.

“너한테서 아까 그 애의 향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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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찰랑찰랑 걸어가는 내가 아마도 웃고 있었나 봐요. 길을 걷다 마주친 조그만 아가가 나를 마주 보고 해바라기처럼 웃었거든요.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에요. 내 마음처럼 된 건 하나도 없는데, 내 마음에 무척 드는 날이거든요. 우연이 장난쳐 망쳐 버린 하루가 이렇게도 완벽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나는 결심했지요. 앞으로도 우연과 장난으로 가득한 하루를 두 팔 벌려 맞이하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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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 여러분이 만들게 된 빵의 이름이 뭔지 혹시 눈치채셨나요?
네 맞아요, 바로 우리 모두의 ‘하루’예요. 이 하루라는 재료는 갖가지 모양과 이름으로 매일매일 우리 두 손에 쥐어지죠.
우리는 이 하루를 가지고 아주 대단한 꿈을 꿀 수도, 아주 사소한 희망들을 그려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예상하지 못한 실수가 일어나기도, 때때로 내 손으로는 통제가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해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도 많을 거예요.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겠죠.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손끝에서 제각각의 이름으로 버무려지고, 하나의 반죽으로 뭉쳐지고, ‘오늘’이라는 오븐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의 그 뭉근한 시간들을요.

셋, 둘, 하나··· 땡! 종이 울려요.
자, 보세요! 얼마나 맛있는 하루가 완성되었는지 말이에요. 음, 고소한 냄새. 역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바로 갓 구운 빵이에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죠.

여러분··· 그거 아세요? 이 빵이 이렇게 맛있어질 수 있었던 비밀 재료는 바로, 모든 걸 아는 듯 움직이던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꽃가루처럼 스며든
‘우연과 장난’이라는 걸 말이에요.




글: Editor LP




케이크를 만들 거야!|마리안느 뒤비크 글·그림|2015년 1월 15일|11,000원

얘들아, 뭘 만들고 있니?
먼저 달걀을 톡 깨뜨려요. 그 다음에는 우유를 졸졸 따르고요.
이제 휘휘 저어야 해요.
케이크 반죽 완성!?
오늘 알베르는 케이크를 만들 거예요. 여우 르나르와 다람쥐 조조, 생쥐 소피가 도와준대요. 모두가 조리법대로 잘 따라 합니다. 먼저 달걀을 톡 깨뜨리고 우유를 졸졸 따른 다음 휘휘 저으면 반죽 완성! 오븐에 넣어 굽기만 하면 맛있는 케이크가 만들어지겠죠?
모두들 신나게 이것저것 넣고, 휘휘 젓고, 주르륵 따라요. 과연 어떤 케이크가 만들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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