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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뱃속 북레시피 - 『편의점』

by 고래뱃속
마음의 끼니 때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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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 불빛도 꺼지고 난 늦은 밤, 땀으로 푹 젖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일은 더욱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빈속을 채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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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보낸 하루의 끝에서 이유 모르게 힘이 빠지고 외로울 때.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음이 쪼그라들고 허전할 때. 마치 물속을 걷는 듯 무거운 팔다리, 귓구멍이 먹먹해지고 코끝에 찡~ 짠 기운이 몰릴 때.
나에겐 이런 순간마다 떠오르는 장소와 한 끼가 있다.
바로 집 앞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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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한 집밥도, 호화스럽고 값비싼 레스토랑의 디너 세트도 좋지만, 다 마다하고 편의점을 찾게 되는 그런 날. 손쉽게 포장지를 뜯고 버튼을 눌러 30초만 가만히 기다리면 김이 폴폴 오르며 완성되는 인스턴트 음식. 고작 편의점에서 때우는 냉동식품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겠냐마는, 그래도 상관없다.
‘나만 좋으면 장땡! 뭐든 만사 오케이~!’를 시원하게 내뱉고 싶어진다. 그런 생각이 누구나 들 때가 있다. 조금 미지근하고 평범하긴 해도 쉽게 물리지 않고 편안한 나만의 휴식이 필요할 때, 30초만 데워도 따뜻해지는 온기와 감정을 채우고 싶을 때 난 편의점을 찾는다. 때로는 배보다 마음의 끼니를 더 챙겨야 하는 법이니까.


오늘은, 동네 골목길 어귀의 작은 편의점에 들렀다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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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네에서 하나뿐인 편의점은 구석진 골목 귀퉁이에 자리 잡아 주변으로 잡초와 들풀이 무성하고 길고양이들이 출입문 앞에 자리 펴고 누워 손님들의 뒤꽁무니를 쫓곤 한다. 고장이 난 건지 볼 때마다 깜빡이는 누런 전광판과 오래된 그늘막., 색바랜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널려 있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풍경과는 달리 항상 이웃 사람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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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묻은 작업복을 털고 땀을 닦던 손으로 서로의 잔을 채워주며 웃는 목수 아저씨들.

이집 저집 실어 나른 소문들을 퍼뜨리느라 호들갑인 동네 아줌마들.

알록달록한 색연필들을 펼쳐놓고 여름 방학 숙제 노트를 끄적이는 꼬꼬마들.

간혹 소나기나 함박눈이 아주 많이 쏟아지는 날이면, 우산이나 붕어빵 봉지를 어설프게 품속에 숨기고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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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은 너무 늦어서일까,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 대신 매미와 풀벌레들 울음소리만 요란하고. 어쩐지 조금 더 힘이 빠져서 편의점에 다다랐을 때, 낡은 의자에 홀로 앉아 있는 널 보았다.


“출출한데 뭐 좀 먹고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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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로에게 밥을 참 많이도 사기도 하고, 얻어먹기도 하며 함께 자라 온 너와 나.

각자의 짧은 인생 드라마를 반찬 삼아 셀 수 없이 많은 밥상 앞에 마주 앉았던,
서로가 서로의 안줏거리이자 밥심이 되어 주었던 오랜 친구인 너는 알까.
너와 만나 나누는 모든 이야기와 끼니가 나의 삶을 덥혀 주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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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와 감정의 맛을 전해주고 싶은 존재가 있다. 차게 굳은 음식에 온기 한숨 불어넣어 주고,
심심한 맛에 절묘한 양념이 되어 주는, ‘인생’이란 이름의 요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그 존재의 이름은 바로 ‘친구’가 아닐까. 내일도 친구와 함께 나누는 끼니의 힘으로 가슴을 데우고 밥심을 세우며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친구와 함께 나눠 먹던 추억의 편의점 끼니 레시피


- ‘불해장’ 정식

불닭볶음면

양평 시래기 해장국

바나나 우유


- ‘고치불’ 정식

고구마 무스

모짜렐라 치즈

불닭 치킨


- ‘참야비’ 정식

참치마요 삼각김밥 + 야채 김밥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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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Editor 영




편의점|이영아 글·이소영 그림|2020년8월 3일|12,000원

서로만 알아볼 수 있는
두 아이의 숨겨진 이야기
범수는 창문으로 집 앞에 있는 편의점을 구경한다. 편의점 주변에는 매일같이 그곳을 서성이는 또래의 아이가 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들을 먹기 위해 눈치 보는 그 아이가 범수는 왠지 마음에 든다. 어느 날 대학생 형들이 먹다 남긴 컵라면에 담배꽁초를 집어넣고 침을 뱉고 간다. 그 모습을 본 범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 아이가 담배꽁초가 들어있는 컵라면을 먹기라도 할까 봐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된 두 아이. 그런데 각자의 숨겨진 모습을 두 아이는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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