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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뱃속 북레시피 - 『대단한 밥』

by 고래뱃속
대단한 밥 X 영혼의 밥상 하루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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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는 제게 늘 ‘쌀 한 톨에도 농부의 피땀이 담겨 있으니 남기지 말고 먹어라’라고 하시곤 했어요. 너무 어렸던 저는 정말로 밥알 한 톨마다 농부의 ‘피’, ‘땀’이 담겨 있다고 문자 그대로 믿었고 밥그릇 벽에 붙어 있는 한 톨까지도 싹싹 긁어 먹곤 했지요. 조금 더 커서는 그 말이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한 번 몸과 마음에 새겨진 의미는 습관으로부터 분리되기 어려워서 저는 감사하게도 제 앞에 놓이는 음식에 담겨 있는 손길과 마음과 시간 같은 것들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우리가 마주하는 밥 한 상에는, 이 한 상을 이루기 위해 거쳐온 모든 이들의 손길 하나하나와 피땀이 서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손길과 시간이 모이고 어우러져 혀끝에 녹아나는 ‘맛’을 이루지요. 오늘은, 그와 같이 정성된 맛이 녹아 있는 ‘영혼의 밥상’ 하루 레시피를 함께 나눠 보려 합니다.


영혼의 밥상을 위한 하루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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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간 가을 아침이 밝았습니다. 가을 해를 닮아 예쁘게 반짝이는 사과 한 알이 두 눈에 가득 담깁니다.


[가을 사과 토스트 레시피]
1. 사과 한 알을 깨끗하게 씻어 얇은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자릅니다.
2. 아몬드 한 줌을 마른 팬에 구워 수분기를 가볍게 날려 준 뒤, 적당히 잘게 다집니다. 건강한 나무에서 계절들을 지나 우리에게 왔을 작고 예쁜 씨앗들이 송이송이 눈이 됩니다.
3. 바삭하게 구운 식빵 위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깨끗하게 씻은 싱싱한 루꼴라 한 줌을 크림치즈 위에 이불처럼 펼쳐 줍니다.
4. 반달 사과를 비스듬하게 겹쳐 올린 뒤, 그 위에 다진 아몬드와 꿀을 뿌려 줍니다.
5. 겹쳐 올린 재료들처럼 겹겹이 쌓아 올린 설렘을 증기 삼아 끓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립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어쩌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지 위의 숨결도 깃들어 있습니다.
6. 바삭한 빵과 크림치즈 한 모금에 고소한 바람 한 줌, 신선한 사과와 루꼴라에 깨끗한 햇살 한 줌을 음미하며 고요하게 차오르는 가을 아침을 반깁니다. 계절의 수확을 두 손에 담아 반짝이던 이들의 눈동자가 내 마음에도 담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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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 불어오는 오후, 따끈하고 구수한 국물 한 모금이 생각납니다. 버섯들깨탕을 끓여야겠습니다.


[버섯들깨탕 레시피]

1. 멸치 다시마 육수를 끓입니다. 바다의 깊은 맛이 물씬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2. 버섯을 깨끗이 씻어 준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향, 맛, 모양을 지닌 어떤 버섯이라도 좋습니다. 땅과 나무의 기억을 품고 있는 버섯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3. 파와 고추를 썰고, 다진 마늘 한 줌을 준비합니다. 눈알이 시큰하게 아려도 매운맛 안에 삶의 얼큰한 비밀이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4. 팬 위에 들기름을 두르고 버섯을 볶아 줍니다. 고소한 향이 배 속을 간지럽히기 시작합니다.

5. 버섯이 숨이 죽으면 육수를 조금 넣고 마늘과 국간장을 넣어 더 볶아 줍니다.

6. 향이 더 올라오고 버섯에서 충분한 맛이 우러난다 싶을 때까지 볶습니다. 그 뒤 남은 육수를 넣고, 두부, 대파, 들깨가루를 순서대로 한소끔씩 끓여 줍니다. 한 박자씩 천천히, 우러나는 맛을 기다리는 마음이 즐겁습니다.

7. 마지막 간은 소금으로 맞추고 불을 끄고 들기름을 휘 둘러 줍니다.

8. 햇살과 바람, 농부의 손길을 가득 머금은 흰 쌀밥 한 숟가락에, 발끝부터 따뜻하게 차오르는 버섯들깨탕 한 모금을 먹습니다. 가슴 가득 넉넉한 기운 차오르니,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커다란 마음으로 허허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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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이 깊으면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납니다. 시간을 절여 오래 두고 펼쳐볼 수 있도록 이 마음 조각들을 끓여 달큰한 한 덩어리 잼으로 피워내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납니다.

[무화과잼 레시피]
1. 처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세상에 이런 맛이 있었구나’ 두 눈이 번쩍 뜨이게 한 과일, 무화과. 그 생생한 놀라움과 닮은 깨끗한 마음으로 무화과를 씻어, 꼭지를 잘라내고 적당한 크기로 자릅니다.
2. 냄비에 무화과를 담고, 무화과 양의 반만큼 설탕을 부어줍니다. 기호에 따라 설탕 양을 조절하거나 꿀을 조금 첨가해도 좋아요. 곱디 고운 가루가 살살 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키가 높은 과수원과 사탕수수밭에 찾아오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과일과 설탕이 한 몸이 되도록 잘 섞은 뒤에 중약불로 30분 간 끓여줍니다.
3.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약불로 줄이고 원하는 농도가 날 때까지 끓여줍니다. 바닥에 눌어붙지 않으려면 끓이는동안 잘 저어주어야 해요. 잼을 만들 때는 이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워도 좋고, 그리운 얼굴 하릴없이 떠올려 봐도 좋습니다. 이 계절 이 순간 나의 마음과 시간이 녹아 엉겨 붙은 잼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맛이 됩니다. 잼이 “다 됐다” 싶은 타이밍은 그렇게 오랜 시간 잼과 하나의 춤을 춘 손끝으로, 마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불을 끄기 한 타이밍 전에 레몬즙을 넣고 조금 더 끓여줍니다.
4. 다 된 잼을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옮겨 식혀줍니다. 이제 보름달처럼 둥둥 뜬 그리운 얼굴에 이 잼 한입으로 계절을 다 밝힐 미소가 떠오르는 모습을 고대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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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지은 음식이 더 맛있는 까닭은,
그만큼의 마음과 정성이 담기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것들에는,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뿐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계절들과 사람들의 정성되고 다사로운 손길 역시 깃들어 있습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반짝임을 머금은 상서로운 힘이 나도 모르게 쑥쑥 솟아납니다.
그 힘에 감사하며, 우리는 오늘도 '밥심'으로 살아갑니다.



글: Editor LP




대단한 밥|박광명 글·그림|2015년 7월 31일|15,000원

산 넘고 바다 건너 너에게 온 특별한 밥상 이야기
“밥 먹어라.” 엄마가 아이를 부릅니다. 밥상을 힐끗 본 아이는 “또 밥이야?” 하고 불평하지요. 엄마는 밥상 앞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밥상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대단한 밥』은 사람과 자연을 잇는 순환 고리를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밥상에서 시작해서 마트, 경매장, 도매 시장, 목장․바다․농장, 그리고 비와 햇살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연결은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밥상이 온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밥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서 오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을 읽는 아이들의 관심은 어느새 점차 나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주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사람에서 자연, 우주로 넓어지고, 이와 함께 생각의 시야도 함께 확장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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