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 생존에 관한 고찰
지난달 실시한 제일기획 공채에서 카피라이터(CW)가 빠졌습니다. 비단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2020년부터 현재까지 카피라이터를 뽑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라 할 수 있는 제일기획의 결정은 장기적으로 업계에 큰 파장을 미칠 것이라 예상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카피라이터의 향후에도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해보겠습니다.
카피라이터의 소멸은 제일기획만의 결정이 아닙니다. 이미 크고 작은 대행사는 카피라이터 채용을 줄이고 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기획을 담당하는 AE를 채워 넣습니다. TV-CF부터 소규모 마케팅을 하는 대행사까지 AE 선호가 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구직사이트를 검색해보신다면, AE가 CW보다 몇 배는 더 구인건수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첫 번째는 AE 영역의 불공정한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AE가 카피라이터의 업무까지 겸하여, 기업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것이죠. 보통 카피라이터는 카피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광고의 전반적인 컨셉을 만드는 것에도 참여합니다. 큰 그림을 알아야, 거기에 맞는 헤드 카피를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핸들을 쥔 사람은 AE입니다. AE가 광고주의 의견을 듣고, 그림을 제안하되 제작팀과 조율하며 광고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카피, 컨셉까지 모두 고민하면서 광고주 제안까지 잘하는 '전천후 멀티플레이어'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이는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한 카피라이터의 고유 전문성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AE만 죽어나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마케팅 쪽에서는 이미 AE와 CW 직무가 합친 '마케터'가 그 전천후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미디어 환경도 그 배경으로 한 몫 하게 됩니다. 이제는 광고도 TV에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매체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보는 광고가 아니라, 짧게 치고 단기간에 결과를 봐야 하는 콘텐츠나 광고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다보니 품이 많이 들어간 광고보단 유명 크리에이터에게 콘텐츠에 광고를 태우는 광고가 많아집니다. 자연히 카피라이터가 설 자리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퀄리티나 개연성은 모두 엉망이어도,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었으니 광고로써의 역할은 달성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씁쓸합니다. '좋은 광고는 무언가를 제공한다.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소비자가 그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을 언급한다'라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카피라이터는 문장과 컨셉에서 빌소한 크리에이티브로 소비자가 될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제는 그것이 필요없는 시대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카피라이터의 퇴장은 텍스트 광고는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TV에서까지 건재했던 텍스트 달변가가 이제는 사양 직종이 된다는 것이 같아 슬픕니다. 그리고 남겨진 자리는 아마 AE가 다 떠맡습니다. AE는 야근쟁이가 되거나 퇴사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시대의 선택일까요? 기업의 욕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