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특선 복에디션

by 고라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독 명절선물로 햄선물세트를 받아보지 못했다.


명절 선물을 받아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꿀이니 곶감이니 소주니 별별 것을 받아봤다.

귀한 것을 받아도, 결핍과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 팀장이 햄선물세트를 주었다.

제법 묵직했는데, 안에는 스팸이 가득했다.

스팸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쩌다 한번 먹을 정도로

애호하지 않음에도, 들고 오는 내내 좋다고 끼고 다녔다.

이게 별 것이 아닌데, 막상 받으니까

오래 묵은 체증이 트림을 내며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 체증은 사초생 시절에 비롯되었다.

언제인가 사장이란 사람이 추석을 대충 넘긴 적이 있다.

사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해 추석과 자신의 결혼식이 비슷한 시기였는데,

근무 중에 직원을 부려 하객답례품을 옮겨놓고는

추석 선물을 어물쩍 넘어가버린 일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택시비 주는 게 아까워 전 직원에게

야근하지 말고, 업무 시간에 일을 다 끝내라는

명언을 남기시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일을 겪어서인지,

그 해 추석을 앞두고 퇴근길마다

남들 손에 들린 추석선물세트가 눈에 밟혔다.


그깟 선물세트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기억은 파묻히지 않고 계속 감정을 머금고 있었다.

그 감정은 남들 다 받는 걸 못 받았다는 감정,

'애매하고 짜치는 설움'이었다.


누구에게 말 못 하는 속 좁은 설움이라,

내색하지 못했지만, 말을 못 하니

오랫동안 깊은 곳에 옹이가 졌었던 모양이다.


못 받은 기억은 힘이 세다.

결핍받은 흔적은 일상 중 뜬금없이 나와 그 시간을 상기시켜 준다.

이제야 옹이에 싹이 돋는다.


작고 옹졸한 속에 묵었던 체기가 쓱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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