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아, 나를 용서해!
채식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단백질 섭취에 주의를 기울였다. 단백질 함량이 높다는 귀리나 메밀 같은 곡류를 장보기 목록에 넣었고, 각종 콩류나 두부가 식단에서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랍의 후무스와 팔라펠을 시작으로 멕시코의 검은콩이나 강낭콩을 넣은 부리또, 렌틸과 병아리콩을 활용한 인도 커리에 각종 콩 수프를 만들었고, 인도네시아의 템페와 콩고기 등으로 식단은 더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잘 익힌 콩은 소금이나 후추를 뿌리지 않아도 그 맛이 기막히게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삼 년쯤 지내는 동안 콩, 특히 메주콩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듣게 되었다. 대두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구조적, 생물학적 작용이 유사한 이소플라본 함량이 높은데, 이 때문에 대두가 성조숙증 유발과 유방암 같은 특정 암 악화, 남성 성 기능 장애와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큰일이었다. 두부와 된장에 간장 맛, 두유라떼, 그리고 템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한국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다양하게 대두를 섭취해 온 나는 물론, 직접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그는 남편도 대두에 대한 이런 견해는 불편했다. 사실 기사의 출처나 사실성을 제대로 따져보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대두에 의심이 생겨버렸다. 대두 섭취를 하루에 한 번 정도로 제한하도록 노력했고, 커피를 마실 땐 두유보다 곡류나 견과, 코코넛을 짠 우유를 선택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냈을까. 이번에는 단백질 자체를 문제 삼는 정보를 접했다.
어떤 의사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백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아기의 빠른 성장을 충족시켜주는 모유에 든 단백질이 5~7%에 그친다고 하니, 이미 성장을 마친 어른이라면 이보다 더 많은 단백질이 필요하진 않고, 결국 현미와 채소, 과일에 든 단백질 정도만 섭취하면 된다는 요지였다. 오히려 콩은 피부 가려움과 무좀, 습진, 비염 같은 알레르기 유발하거나, 천식과 아토피 피부염, 자가면역질환, 만성 통증, 콩팥 문제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콩 섭취로 노폐물 배설 장애를 겪을 수 있고 단백질 소화 과정에서 소변이나 방귀 냄새가 진해진다고도 한다. 더구나 된장과 간장 같은 콩 발효식품은 염분이 지나치므로 먹지 않는 게 좋으며, 단순히 현미 채식 만으로 단백질 섭취가 충분하다는 이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걱정했던 만큼 단백질 섭취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황성수 힐링스쿨 유투브 참고 https://www.youtube.com/channel/UCeAC7B7T2OKJcHheUCcS72w)
그래서 콩 섭취를 확 줄였다. 매 끼니 콩류를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손을 주무르다 보니 손톱 표면이 유난히 거칠어 보였다. 손톱 주변 피부도 많이 갈라졌다. 순간 콩을 안 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콩 없이도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던 의사는 현미까지 생식했다. 우리는 현미는 고사하고 샐러드 먹을 때를 빼면 잎채소도 거의 익혀 먹는다. 살짝 찌거나 데치기도 하고 기름에 볶거나 푹 삶아서 국으로 먹는 게 보통이다. 익히는 과정에서 영양 손실이 꽤 있을 테다.
사실 더 큰 이유는 내 생활 습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물건 나를 일이 많았고 페인트칠도 해야 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손바닥만 한 붓으로 벽을 칠하며 한두 주를 보냈다. 날씨가 건조한데 손을 자주 씻어야 했던 점이나, 운동은 거의 안 하고 밖에 나가지도 않는 데다가 창가에서 햇볕 쬐는 일도 없었다. 갑자기 늘어난 노동량이나 운동 부족 탓이 컸겠지만, 평소 체력 관리 부족보다 음식 탓을 하는 게 좀 더 쉬웠다. 무엇보다 같은 채식이라도 생식과 익혀 먹는 데서 오는 차이를 무시할 순 없다. 그래서 생식을 하기로……한 건 아니고, 지금처럼 채식하면서 콩류도 적당히 먹기로 했다.
내친김에 대두에 대해 좀 더 검색해 보았다. 그동안 많은 실험이 진행되었지만 대두 섭취로 인한 뚜렷한 부작용 결과는 찾지 못한 모양이다. 대두는 인체 내에서 일반 호르몬과 다르게 작용해 에스트로겐을 교란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물 실험에서 약간의 부정적 효과를 발견했지만 임상 시험에서는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왔다. 골다공증 예방과 갱년기 장애 개선, 암세포 증식 억제와 생식 기능 강화 등의 효과가 있었다고 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대두의 부작용과 효능으로 과학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면, 선조들의 지혜에 의지하기로 했다. 대두가 주요 단백질원이었던 한민족을 보라. 된장과 간장, 두부를 꾸준히 먹어온 그들은 종족 유지에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제야 가리지 않고 고루 먹는 게 제일이라는 고전적인 결론에 닿았다. 그러면 엄마가 그러시겠지. 그러니까 고기랑 생선도 먹어야 한다고. 그럼 난 이렇게 대꾸하겠지. 고기는 안 먹어도 건강에 지장이 없고, 고기 말고도 먹을거리가 참 많다고. 그래도 엄마는 삐쩍 마른 얼굴로 하는 소리라곤 하고 뒷말을 흐리거나 안타까운 얼굴로 쯧쯧 하실 테고.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 대로. 서로 생각을 바꾸긴 힘들다. 엄마 몸에서 떼어 나온 사이조차 이럴진대 그 누구와도 같은 생각일 수 없지. 그러니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만족하고 수긍할 만한 선택을 한다. 엄마, 엄마와 다르게 먹어서 미안해요. 그런데 솔직히 진짜로 미안한 건 아니에요. 전 지금 제 식단이 정말 좋거든요. 그러니 엄마도 걱정하는 마음 터세요!
풀은 익힌 누에콩을 양념해 으깬 이집트 음식이다. 길게는 풀 므다마스(Ful Medames/Foul Mudammas)라고 하지만, 간단히 줄여서 풀이라고 부른다. 이집트에서 아주 평범하면서 널리 사랑받는 음식인 풀은 팔라펠, 쿠샤리와 함께 이집트인 밥상의 주요 음식으로 꼽힌다. 익힌 콩만 있다면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콩을 으깨고 마늘과 레몬, 올리브유, 큐민을 섞으면 된다. 각각 특유의 향이 강한 재료 때문인지 풀은 피타 빵이나 팔라펠이 목으로 술술 넘어가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누에콩 대신 달고 담백한 맛이 나는 블랙 아이드 피스나 핀토빈 같은 강낭콩으로 풀을 만들어도 좋다.
재료
푹 익힌 콩 두 컵 (말린 콩 3/4컵 정도를 하룻밤 불렸다가 끓인다.)
마늘 2~4쪽, 고추* 1개, 토마토 1개, 파슬리* 한 줌
큐민 1작은술, 올리브유 3-4큰술, 레몬즙 1큰술, 소금 약간
토핑 선택 재료: 토마토, 오이, 파, 올리브
*고추는 입맛에 따라 청양고추나 할라피뇨를 써도 좋다. 고추가 없다면 고춧가루로 대신한다.
*파슬리 대신 파, 고수, 쑥갓, 미나리, 민들레 잎 등 향이 좋은 풀도 잘 어울린다.
요리법
1. 익힌 콩을 으깬다.
2. 마늘과 고추는 찧고, 토마토와 파슬리는 잘게 썬다.
3. 으깬 콩과 모든 재료를 섞는다. 이때 올리브유는 1큰술 정도만 넣고, 나머지 올리브유는 토핑 올릴 때 함께 뿌린다.
4. 토마토, 오이, 파, 올리브 등 취향에 맞게 썬 토핑을 올리고, 피타 빵이나 다른 요리에 곁들여 대접한다.
*피타 빵 속에 풀, 샐러드, 볶음밥, 각종 소스 등을 넣어 먹는다. 피타 대신 또띠야나 일반 식빵을 써도 좋다. 넉넉히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하고 토스트 위에 가볍게 발라서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이때 오이나 토마토를 썰어 올리면 든든한 오픈 샌드위치가 된다.
재료
익힌 검은콩 2컵, 김치 1컵, 셀러리 1쪽, 마늘 3~5쪽, 파 1쪽
아마씨 가루 2큰술, 옥수수가루 1컵
*아마씨와 옥수수가루 대신 빵가루, 밀가루 등을 쓸 수 있다.
*양파, 당근, 피망, 버섯 등 다른 채소를 섞어도 좋다.
요리법
1. 익힌 콩은 체에 걸러 물기를 빼고 씹는 맛이 좋을 정도로만 으깬다.
2. 김치는 손에 쥐고 짜서 물기를 뺀다. 김치와 채소는 잘게 다진다. 믹서를 사용할 땐 너무 질척하지 않고 채소가 씹힐 정도로만 간다.
3. 큰 용기에 모든 재료를 넣고 잘 섞어준다.* 옥수수가루는 1/3~1/2컵 정도를 남겨둔다. 재료에 남은 수분 정도에 따라 옥수수가루를 조절한다. 모두 섞은 뒤에 손안에서 잘 뭉쳐질 정도면 된다.
4. 납작한 용기에 남은 옥수수가루를 넣어 준비한다. 3번 혼합재료를 호두 알 정도 크기로 떼어 (약 1큰술 크기) 손안에서 둥글게 만들고 옥수수가루를 씌운다.
5. 오븐 팬에 기름종이를 깔고 서로 간격을 두어 콩볼을 올린다. 섭씨 190도에 예열된 오븐에서 겉이 노릇해질 정도로 굽는다. (15분쯤 지나 살짝 둥글리며 뒤집어주고 십여 분쯤 더 굽는다.)
6. 밥, 스파게티, 샐러드, 토마토소스, 케첩, 올리브유 등과 곁들여 대접한다.
*김치가 넉넉히 들어가므로 간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소금, 후추, 고수 씨앗 가루, 큐민 가루 등을 원하는 대로 섞어 풍미를 더해도 좋다. 짭짤한 맛이 좋다면, 콩을 으깰 때 소금과 후추 등으로 따로 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