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20
신기한 일이지만 우울증 증세는 날씨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흐린 날은 마음도 울적해진다거나, 화창한 날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지요. 그런데 그게 정말이더군요.
날씨가 맑고 화창할 때면 우울증 증상도 조금쯤 더 나아집니다. 과학적으로는 햇빛을 받을 때 체내에서 비타민D가 만들어지는데, 바로 이 비타민D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세로토닌 합성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아진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굳이 그런 의학적인 지식까지 끌어다 쓰지 않더라도, 화창한 햇살을 받고 있노라면 증세가 조금 완화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한때 점심 시간마다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흐린 날에는 증세도 더 나빠집니다. 저는 우울증이 심했을 때 하루 중 아침의 상태가 가장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날씨마저 흐릴 때면 엎친 데 덮친 격이었지요. 우중충한 하늘은 그 자체로 마치 온몸을 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줍니다. 출근을 하면서 잿빛 하늘을 볼 때마다 종종 이유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두 번의 발작도 모두 흐린 날에 일어났습니다.
더군다나 비까지 오는 날은 최악입니다. 산책이나 운동처럼 기분 전환이 되는 일도 할 수 없게 되니까요. 중증 우울증 환자는 제가 한때 그러했듯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경우가 잦은데, 그럴 때 좋지 않은 날씨는 내가 나가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합당한 핑계가 되어 줍니다. 그렇게 집 안에만 있게 되면 상태가 더 안좋아질 수밖에 없으니 그야말로 악순환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일기예보에 민감해졌습니다. 거의 매일 주간 날씨를 체크하고, 비가 예보되는 날이 있으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반면 날씨가 좋으면 어떻게라도 핑계를 만들어서 잠시라도 밖에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예컨대 마트를 간다든지, 카페를 방문한다든지, 재활용품을 버린다든지, 하다못해 집 앞 편의점에라도 가는 식으로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햇볕을 쬐면 약간이나마 보람도 느낍니다.
최근에는 날이 맑고 미세먼지도 적을 때마다 온종일 집의 창문들을 열어 놓고 환기를 합니다. 그러면 기분도 함께 환기되는 느낌이 들지요. 반면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창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폐쇄적인 느낌이 나다 보니 심리 상태가 다소 안좋아집니다. 날씨까지 흐릴 때면 더 치명적이라 그럴 때는 집안의 모든 형광등을 켜 놓기도 하지요.
얼마 전에는 이틀 내내 비가 왔습니다. 첫째 날에는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엄청나게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낄낄댔는데, 그 웃음과 웃음 사이의 짧은 순간에도 우울하고 답답한 감정이 스믈스믈 밀려오더라고요. 그래서 평소보다 약을 빠르게 먹고 얼른 잠들어 버렸지요. 하지만 뜻밖에도 둘째 날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매우 즐겁게 하루를 보냈지요. 아마 다른 일로 기분전환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비가 온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우울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조금은 기뻤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우울증 관련 책에서도, 필자가 자신의 우울증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특히 일교차가 심한 날에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일기예보를 보며 미리 이런저런 준비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나 자신의 우울증을 다스려볼까 싶습니다.
이제 슬슬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계절이라고들 하지요. 날이 흐리고 비가 자주 오며 습기가 차서 끈적거리는 삼중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특히 여름철에 우울증 발병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저는 더위에 무척 약해서 여름마다 퍼지는 체질인지라, 우울증에 걸린 후 처음 맞이하는 여름이 사실 꽤 걱정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여러 가지로 마음의 대비를 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