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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Jul 16. 2023

병가 복귀 후 일주일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27

병가 기간이 끝나고 이번 주부터 다시 출근했습니다. 

     

전날 밤에는 잠이 잘 안 오더군요. 아침에도 살짝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그렇다고 불안까지는 아니고 그저 조금 긴장이 되는 그런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두 달 가량 스스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돌이켜 보고, 아울러 전능하신 항우울제의 힘을 믿으면서 직장으로 출발하는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평범하게 괜찮습니다. 사무실에서 물 먹은 이불 마냥 처져 있지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오히려 조금 상기되고 활달해진 느낌마저 듭니다. 흔히 하는 말로 약간 업(UP)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항우울제를 먹으면 체내의 세로토닌이 늘어난다니 그 영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지금 복용하고 있는 분량이 최대치니까요. 나중에 약을 줄이게 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도 됩니다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죠 뭐.


덕분에 일하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마침 시기적으로 무척 바쁠 때인데도 지금까지는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픈 일도 그럭저럭 해내고 있습니다. 다만 함께 먹고 있는 항불안제 때문에 종종 졸리긴 하네요. 하품이 자꾸 납니다. 하루 일곱 시간을 자는데도 부족한 느낌입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의 조직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 보니, 제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은 아주 공공연한 소문으로 퍼진 모양입니다. 심지어 저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인사를 하면서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딱히 신경이 쓰이지는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게 숨길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조직의 문화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불과 사오 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의학과 관련 질병에 걸린 직원에 대해서는 뒤에서만 수군대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 게 불문율 같은 것이었지요.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합니다. 정신의학과에 다니는 사람이 워낙 늘어나기도 했고요. 

     

부서원들이 복귀한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바람을 불어넣은 꽃 풍선까지 자리 뒤에 달아주었네요. 뭔가 엄청 부끄러우면서도 기뻐서 떼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반겨 준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출퇴근하면서 다시 신해철의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십 대 시절에 들었던 음악이 평생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된다는 주장이 아무래도 사실 같습니다. 그리고 이십여 년 전에 그러했듯이 지금도 신해철은 노래 가사를 통해 제게 힘을 줍니다. 해철이형 고마워요. 정말.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분과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놓고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조직 내에서도 손꼽히는 골치 아픈 일의 담당 부서장이고, 최근에는 가족이 아파서 이식 수술까지 하는 사람에 여러모로 힘든 일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차분한 말투로 오히려 저를 격려해 주더군요. 그러면서 내려놓음의 중요성에 대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저 또한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던 그런 이야기를 말입니다.      


이른바 ‘인생 선배’란 이런 분을 말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도 그런 인생 선배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훗날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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