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쫑 Nov 09. 2019

크메르인의 성지 프놈쿨렌산, 시엠립

화려했던 앙코르 제국


  프놈쿨렌, 이 산은 크메르족의 성지다. 802년 앙코르 시대를 연 자야바르만 2세는 프놈쿨렌산을 중심으로 이곳에 왕조를 열었다. 이곳은 산이 평평하고 씨엠립강이 시작되는 곳으로 왕권 초기에 왕권을 확립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프놈쿨렌산은 사암의 산으로 앙코르 유적에 사용된 대부분의 사암은 이곳에서 채석되어 시엠립강을 통해 운반되었다.

  프놈쿨렌산은 시내로부터 50km 떨어져 있다. 반띠쓰레이 사원에서도 15km 더 가야 한다. 반띠쓰레이 사원과 프놈쿨렌산은 하루 일정으로 빡빡하다. 두 곳을 다 가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프놈쿨렌산에서 가봐야 할 곳은 두 곳인데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같은 산이지만 길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먼저 끄발스삐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67번 국도가 프놈쿨렌산을 절개하여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산이다.

끄발스삐언으로 가는 산길

  끄발스삐언은 관리사무소에서 1.5km 열대 우림의 산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한낮 무더위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다. 나 혼자 걷고 있자니 제대로 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을 따라 작은 산길을 올라간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나지만 오늘따라 1.5km가 꽤나 멀게 느껴진다. 사람이 안보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인적이 없고 이정표도 없으니 혼자 걷는 나도 움찔하곤 한다(내려오는 길에 세 명의 여행객을 만나긴 했다). 산속 열대 우림의 나무들이나 사암을 보니 앙코르 유적이 떠오른다. 프놈쿨렌산의 왕도 위치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밀림 속에 묻혀 있다.

  깊은 산속의 계곡에 수많은 링가가 새겨져 있는데 그걸 찾은 사람도 신통하다. 끄발스삐언은 프랑스 학자에 의해 1966년 발견되었다. 끄발스삐언은 작은 계곡물을 건너는 다리를 말한다('스삐언'은 '다리'의 뜻). 그 계곡에 수많은 링가가 있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링가(남자의 성기)를 통과한 계곡 물은 요니(여자의 성기)를 통과하며 신성한 물이 된다. 그냥 보면 작은 계곡이지만 영험이 느껴지는 곳이다. 나는 요니를 지나는 물에 손을 담그며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이곳은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다.

끄발스삐언의 링가와 요니
계곡에 새겨진 수많은 링가와 조각들

  링가와 요니를 거친 물은 아래로 흐르다 작은 폭포가 되어 잉태의 포효를 한다. 나는 폭포 아래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폭포수를 맞으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신비로운 생명의 잉태를 위해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수많은 링가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생명이다.

  프놈쿨렌산에 가기로 했을 때 헷갈렸다. 끄발쓰삐언과 프놈쿨렌산 폭포가 같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두 곳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끄발쓰삐언을 내려온 나는 반띠쓰레이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돌아 프놈쿨렌산 폭포로 향했다. 차로 30여분을 달려 입구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이곳은 프놈쿨렌산 폭포와 천 개의 링가로 유명하다. 이곳 폭포는 따프롬 사원과 함께 '툼레이더'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산 정상까지는 4~5km를 오르는데 12시 전까지는 올라가는 차만, 12시 넘어서는 내려오는 차만 다닌다. 산길이다 보니 교행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곳은 앙코르 입장료가 통용되지 않는다. 20$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신성한 곳에 내는 돈이니 그만큼 비싼가 보다.

프놈쿨렌산 빨간 바나나, 자주색 바나나

  산에 오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캄보디아에서 오토바이는 어디든 간다. 손을 뒤로 뻗어 엉덩이 옆의 손잡이를 잡는데 세게 잡아야 하기 손에 쥐가 날 정도다. 역시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산길을 오르는 게 쉽지 않다. 손도 아프고 잠시 쉬고 싶던 차에 프놈쿨렌산에만 있다는 빨간 바나나를 만났다. 직접 보니 빨간색 외에 자주색도 있고 다양하다. 껍질을 까 보니 속 색깔은 보통 바나나와 같다. 맛도 비슷하다. 산 정상까지 한참을 가야 하는데 이런 재미는 즐겁다. 나는 빨간 바나나를 파는 어린아이와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뻔하다. 남루한 옷차림에 학교는 제대로 다닐까 의문이다. 하루 1$로 사는 현실이 캄보디아에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프놈쿨렌산은 크메르루즈 시절 폴포트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지역으로 오지 중에 오지다.

프놈쿨렌산의 링가와 요니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나 보다. 산 정상에 다다르니 평지가 나온다. 프놈쿨렌산은 산 정상이 무척 넓다. 그래서 이곳이 산인지 헷갈릴 정도다. 산 정상에는 마을과 학교, 사원 등 산 아래의 풍경과 비슷하다. 자야바르만 2세가 프놈쿨렌산을 왕도로 삼은 이유가 이해가 된다. 나는 맨 먼저 천 개의 링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링가가 천 개가 넘는다는 것은 무척 많은 링가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끄발쓰삐언 링가의 두배도 넘는다. 계곡 폭이 넓고 물이 많지만 수많은 링가가 눈에 띈다. 천 개면 어떻고 이천 개면 어떤고? 인간의 얄팍한 셈법으로 세어 보는데 금방 잊고 다시 센다.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수많은 링가는 춤을 추고 있다.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하다. 산 정상에서 흘러내려온 물을 받은 링가는 요니를 거쳐 생명을 잉태하고 프놈쿨렌산 폭포에서 새 생명을 뿌린다.

  프놈쿨렌산 폭포는 20m 높이에서 장엄한 물줄기뿌리며 포효하고 있다.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하얀 포말을 만들며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고 있다. 이 폭포는 크메르족의 생명수다. 프놈쿨렌산은 크메르족의 역사며, 폭포앙코르 제국의 기개다. 그래서 그런지 이 폭포는 건기에도 마르지 않는다. 나는 폭포수 앞에서 크메르족의 역사를 회상해 보았다. 앙코르 제국을 연 자야바르만 2세, 앙코르왓 사원을 지은 수리야바르만 2세, 앙코르 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의 모습들.. 온 산에서 크메르족의 기운이 감도는 느낌은 산을 내려올 때까지도 가시지 않는다.

프놈쿨렌산 폭포

  앙코르 유적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는 크메르족의 근원에 대해 늘 궁금했다. 프놈쿨렌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존재다. 이곳은 크메르족의 역사를 잉태한 곳이다.  프놈쿨렌산에서 앙코르 제국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크메르족의 부활을 기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완의 궁전 따께오, 시엠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