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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Nov 15. 2019

울창한 산림 도시 싸엔모노롬의 코끼리,  몬돌끼리주

자연 그대로의 숲이 살아 숨 쉬는 곳

  싸엔모노롬은 프놈펜에서 북동쪽으로 375km 떨어져 있다. 몬돌끼리주의 주도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캄보디아에서는 꽤나 먼 거리다. 그나마 몇 년 전 도로가 포장되어 요즘은 6~7시간이면 간다. 싸엔모노롬 가는 길은 프놈펜에 차편이 많아 수월하다. 싸엔모노롬은 해발 733m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온도가 5~10도 낮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긴 바지와 숲에서 입을 가벼운 점퍼를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요즘 캄보디아도 인터넷 사정이 좋아져서 웬만한 곳에서는 인터넷이 다된다. 올해부터는 전국의 장거리 버스도 인터넷으로 예약, 발권이 가능하여 일찍 나가 자리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장거리 교통수단으로는 12~15인승의 밴이 많이 운행되는데 좌석이 비좁기도 하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 특히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흔들림이 심해 차멀미할 수도 있어 장시간 앉아서 가는데 인내가 필요하다. 나는 일주일 전 인터넷으로 사엔모노롬행 차량을 예약하면서 2번 좌석을 클릭했다. 캄보디아 밴에서 맨 앞 오른쪽 창가 좌석이 가장 편한 좌석이다.

  밴 승객 대부분 여행객이다. 프놈펜의 아침을 빠져나오는데 차량과 오토바이, 툭툭이 엉켜 밴이 더디 간다. 잠깐 잠이 들었나 싶은데 차가 길가 수리점에 멈춰 섰다. 캄보디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껌뽕짬이란다. 잠깐 눈 붙인 게 두 시간이었다. 수리를 마친 차는 다시 출발했다. 맨 앞좌석의 나는 불안한 맘으로 안전띠를 조여 맸다. 다행히 밴은 더 이상 고장 없이 잘 달렸다.   

  캄보디아는 쌀과 과일이 지천이니 굶어 죽는 사람 없고 365일 더우니 가볍게 걸치는 옷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이런 생활환경이라서 그런지 캄보디아 사람들은 급한 게 없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차는 대개 시속 50~60km고 비포장도로는 30~40km로 간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는 답답할 수 있다. 힐끗힐끗 운전석의 속도계를 보던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보지 않기로 했다. 어찌 보면 느리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는다는 의미다. 현실에 순응한다는 뜻이고. 캄보디아의 느린 삶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시원하게 달리는 몬돌끼리 도로

  싸엔모노롬 가는 길은 최근에 포장되어 길이 좋다. 양쪽에 숲을 두고 시원하게 뻗은 길을 달린다. 밴의 창문을 열었다. 신선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캄보디아의 어느 도시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공기의 맛이다. 해발이 높아지는 것도 있지만 청정지역 그대로의 자연이라서 더 그렇다. 그대로 창문을 열어 두었다. 해발이 높아지는 걸 체감할 순 없지만 공기가 전혀 다르다는 건 체감할 수 있다. 나는 조금씩 하늘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맑던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다. 캄보디아 날씨는 열대몬순 기후로 해가 쨍하다가도 하늘이 변하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짧은 시간에 무척 많이 내린다. 퍼붓는다는 말이 맞다. 기사가 속도를 늦춘다. 비가 세차게 내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다. 밴의 와이퍼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차가 더디 가지만 맨 앞자리에서 보는 밖의 풍경은 장관이다. 나는 은근히 비가 더 퍼붓기를 바랐다. 비와 안개로 덮여 있는 이 도로가 운전사에게는 고역이지만 나에게는 일생에 다시 보기 힘든 비와 안개, 숲의 향연이다. 몬돌끼리가 나를 설레게 만든다.



몬돌끼리 상징 '뚠싸옹'(산소)

싸엔모노롬에 오후 4시가 넘어 도착했다. 싸엔모노롬은 자그마한 도시다. 중심가는 걸어서 한두 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 캄보디아는 주도마다 상징물이 세워져 있다. 밴에서 내려 첫눈에 들어온 것은 몬돌끼리 상징물 ‘뚠싸옹’이다. 언뜻 보면 물소지만 이 소는 몬돌끼리 산에서만 사는 흙색의 소다.  뚠싸옹이 있는 곳은 도심 중앙의 원형교차로. 싸엔모노롬은 원형교차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돌고 있다.   

                                     

   

  숙소를 나와 싸엔모노롬에서의 첫날 일정을 시작한다. 오기 전 도시를 대략 파악한 나는 500여 m의 중앙대로를 걷다가 시장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시장이다. 저녁 장을 보는 분주함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몬돌끼리 전통주 '쓰라삐엉'

  시장 가게 앞에 놓여있는 몬돌끼리 전통주 ‘쓰라삐엉‘ 항아리 모습이 이채롭다. 항아리 안에는 쌀겨와 누룩이 버무려져 있다. 건식 발효를 한 것으로 물을 붓고 한 시간쯤 기다리면 술이 된다. 마실 때는 나무 빨대로 빨아먹는다. 자연에 나를 맡기는 것이 이번 여행 목적인 나는 이곳의 편의 시설이나 먹는 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다지 필요한 것도 없지만 3박 4일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도시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는 게스트하우스나 저렴한 호텔도 많고 먹을 곳도 많다.    

싸엔모노롬 시가지 모습

  몬돌끼리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하지만 인구 밀도는 가장 낮다. 80%가 프농족 등 소수민족이다. 소수민족은 지금도 그들만의 전통을 고수하며 살고 있다. 특히 프농족은 조상 대대로 코끼리와 함께 살고 있다. 몬돌끼리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울창한 숲이요 가장 만나고 싶은 놈은 코끼리다. 그래서 제일 먼저 코끼리 투어를 잡았다. 앙코르 제국 시대에 코끼리는 전쟁의 중요한 병력이었고 사원을 지을 때는 석재를 나르는 송수단이었다. 무분별한 수렵으로 객체가 줄어 지금은 몬돌끼리와 라따나끼리에 백여 마리가 안 되는 코끼리가 남아있다고 한다.


  새벽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오늘 나는 NGO단체 ‘몬돌끼리 프로젝트’에서 운영하는 코끼리 보호프로젝트에 참가한다. 20살~60살의 코끼리 다섯 마리가 살고 있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먹이인 바나나를 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젝트는 점점 사라져 가는 코끼리를 안타까워한 한 독일 청년에 의해 2017년부터 시행되었다고 한다. 오늘 참여자는 22명. 다 서양인이고 대부분이 젊은이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코끼리를 돕는 거지만 신체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참여하기 쉽지 않다. 숲 속으로 한참을 걸어가야 하기도 하고 사파리 투어 차량 뒤 짐칸에 쪼그리고 앉아 울퉁불퉁한 산길을 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량 흔들림이 어찌나 심한지 구토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마냥 즐겁다. 흔들리는 짐칸에서도 오랜 친구처럼 대화도 잘한다. 젊음과 긍정의 모습이 부럽다.   

사파리 차량의 젊은이들

  도착한 곳에서 본 산등성이의 광경은 나의 속 울렁거림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평야처럼 펼쳐진 숲, 코발트색의 하늘 그리고 뭉게구름. 감상에 젖어 한참을 그 자리에 혼자 서 있었다.                            

몬돌끼리 프로젝트의 시작

  일행은 벌써 내려가 내 눈에서 사라졌다. 허겁지겁 뛰어 내려갔더니 가이드 설명이 끝나고 다들 양손에 바나나를 한 묶음씩 들고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나도 뒤따랐다. 청명한 날씨지만 오늘 새벽에 내린 비로 습하고 진흙길이라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코끼리를 만난다는 희망에 다들 표정은 밝다. 가이드가 걸어 내려가며 이상한 소리를 낸다. 코끼리를 부르는 소리였다. 가이드가 기다리라는 장소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는데 순간 누군가 ‘와우~~’하고 외친다. 저쪽 숲 속에서 커다란 코끼리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두려울 정도다. 영국 친구가 용감하게 바나나를 코끼리 코에 갖다 댄다. 코로 받아 냉큼 입에 넣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기다. 가까이에서 본 코끼리는 길이는 5m, 높이는 2.5m 정도고 무게는 4~5톤은 족히 나갈 것 같다. 덩치에 비해 표정이 어찌나 순진해 보이는지 우리는 코끼리를 쓰다듬으며 친한 척했다. 뒤이어 한 마리가 나오고, 또 나오고. 가져온 바나나는 금방 동이 났다. 사실 우리가 가져온 바나나는 코끼리의 식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간식도 안 된다. 코끼리는 하루에 100kg 이상의 풀을 먹는다고 한다. 우리가 코끼리를 위해 온 건지 코끼리가 우리를 위해 온 건지 헷갈린다.   

코끼리와의 첫 만남

  가이드가 장소를 이동하며 코끼리를 부르는데 기어코 한 마리는 만나지 못했다. 몬돌끼리는 코끼리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가이드가 부르는데 코끼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여행객도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나타나지 않은 한 마리 코끼리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한 거라고.

  오전 투어를 마치고 나무집 휴게소로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검게 그을린 나무를 가리키는데 나무 안이 시커멓게 타버린 게 신기하다. 이 나무는 이엥 나무(기름 나무)로 나무 수액을 채취해서 불을 붙일 때 사용한다고 한다. 프농족은 오래전부터 이 나무 수액에 코끼리 배설물을 섞어 등불로 사용했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내려다본 코끼리 숲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두 시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누구는 해먹이 걸려있는 곳으로, 누구는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위층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위층 평상 마룻바닥에 누워 밖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저 멀리 코끼리가 산다는 숲이 가물가물 보인다. 내 눈도 스르르 감긴다.

                                       




  ‘커피 커피’하는 소리에 깼다. 후식으로 제공하는 몬돌끼리 커피다. 온 산에 진한 커피 향, 몬돌끼리 자연향이 퍼진다. 오후 일정은 멀리 있는 강가로 내려가 코끼리 목욕시키기다. 한낮이지만 습한 건 여전하다. 다시 숲 속을 걸으니 옷이 땀에 흠뻑 젖는다.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코끼리

강가에 도착하여 다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강물로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코끼리를 기다리는데 나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좀 떨어진 강가 그늘에 앉았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 코끼리에 나는 놀라 강물에 빠질 뻔했다. 코끼리가 위쪽으로 가지 않고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나는 엉거주춤하며 산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가이드가 낄낄대며 웃는다. 가이드가 뭔 소리를 지르니 그제야 방향을 바꾸어 위쪽으로 이동한다. 나는 가이드와 코끼리가 진짜로 대화한다고 믿게 되었다.

  코끼리는 땀샘이 없다. 쇠파리, 진드기 등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코끼리는 스스로 진흙을 끼얹는다. 그래서 목욕은 필수다. 목욕이 끝난 한 마리가 가고 두 마리가 오고, 두 마리가 가고 다시 두 마리가 오고. 오후에 우리는 다섯 마리의 코끼리를 다 만났다. 사람과 코끼리 모두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간과 코끼리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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