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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Nov 11. 2019

캄보디아의 젖줄 돈레삽,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혼자 떠나는 시간 여행

  6천 년 전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거대한 호수. 동남아시아 최대 호수이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 돈레삽. 2,700 km² 면적에 250km의 길이로 캄보디아 국토의 15%를 차지한다. 우기에는 메콩강물이 역류하여 돈레삽으로 흘러들어 홍수 조절 역할을 하며 그때 돈레삽의 면적은 서너 배로 불어난다(제주도 면적의 5~6배). 건기에 육상에서 자란 유기물이 우기에 물에 잠기며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다량의 플랑크톤이 발생하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돈레삽에는 600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100kg이 넘는 물고기도 있다. 돈레삽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터전이며 단백질 공급원이다. 특히 많이 잡히는 물고기인 ‘리엘’은 지금의 캄보디아 화폐단위로 쓰인다. 그만큼 돈레삽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돈레삽 호수

  ‘돈레’ 강, 호수를 뜻하며 ‘삽‘은 싱겁다는 뜻이다. 처음 돈레삽을 보면 ’와~ 바다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바다는 아니다. ‘바다같이 큰데 바다가 아니라니 좀 싱겁다‘ 그런 뜻이다. 바다같이 큰 돈레삽이 요즘은 수량이 줄고 있다. 비가 적게 오는 탓도 있지만 메콩강 발원지인 중국에서 많은 댐을 건설하여 아래로 흐르는 물을 막고 있는 것이 주원인이다. 유입량이 줄어들면서 돈레삽은 오염이 심해지고 물고기도 줄었다. 돈레삽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캄보디아 다섯 개 주에 걸쳐 길게 이어진 돈레삽에는 물 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레삽 외 메콩강 유역에도 수상마을이 많지만 씨엠립주에 가장 많은 수상마을이 모여 있다. 시엠립에 여행 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곳의 수상마을이 더 알려지게 된 것도 있다.

돈레삽 수상마을

시엠립주 돈레삽에는 3개의 큰 수상 마을이 있다. 쫑크니어, 껌뽕플럭, 껌뽕클랑. 시엠립에 오면 수상마을은 필수 여행 코스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가는 수상마을은 시엠립 시내에서 가까운 쫑크니어 마을과, 껌뽕플럭 마을이다. 대부분의 수상마을은 365일 물 위에서 생활하지만 돈레삽 지류를 타고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껌뽕플럭같이 우기에만 물에 잠기는 곳도 있다. 따라서 껌뽕플럭은 우기와 건기에 마을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


  

  돈레삽 여행을 위해서는 시엠립 시내 어디서나 구입할 수 있는 투어 상품을 이용하면 좋다. 껌뽕플럭과 쫑크니어까지 차편이 없어 혼자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 투어 상품은 하루 코스가 20~25$ 정도며 가이드, 차량, 배 삯이 포함된다. 껌뽕클랑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수상마을이지만 꽤 멀다.

  시엠립 시내에서 30km를 달리면 껌뽕플럭 마을로 들어가는 돈레삽 지류에 닿는다. 이곳에서부터 돈레삽 근처까지 3~4km에 걸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우기에 집이 물에 잠기지 않게 기둥을 받쳐 8m 높이로 집을 지었다. 우기에 물이 8m까지 차오른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돈레삽으로 가는 배는 크기가 다르지만 대개 삼사십 명까지 탈 수 있다.

  돈레삽은 매번 와도 새롭다. 9월 다시 이곳을 찾았다. 배를 타고 2층에 올라가면 석양을 보기에 좋다. 2층 한쪽에 꼬맹이 녀석이 눈에 익어 자세히 보니 몇 달 전 왔을 때 탔던 그 배다.            

돈레삽을 운항하는 배

  강폭이 넓지 않은 지류는 비가 많이 안 와서 그런지 우기인데도 깊이도 1~2m밖에 안 된다. 배의 스쿠르가 강바닥을 훑으며 나가는데 마치 쟁기질하는 모습이다. 옆을 지나가는 배의 물결에 내가 탄 배가 흔들린다. 강가 한쪽에서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신나게 수영을 하며 오후를 즐기고 있다.

쏘포안

  

  꼬맹이 이름은 ‘쏘포안‘, 11살이다. 주말이나 방학에 선장인 아버지를 도와 배를 탄다. 내가 아는 체를 하자 내 옆에 와 앉는다. 나는 오늘 자연스럽게 쏘포안과 동행이 되었다. 배 엔진 소리가 크니 내 목소리도 커진다.

“쏘포안! 일하는 게 힘들지 않니?”

“괜찮아요.”

“엄마는 집에 있니?”

“아니오. 아빠 옆에 있어요”

나는 타면서 선장 아빠의 모습만 봤지 그 옆에 누가 있는지를 몰랐다.

“일 끝나면 아빠가 용돈 좀 주니?”

녀석은 웃으며 고개만 끄떡인다. 얼마나 주냐고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질문이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행복한 가정을 가질 거예요.”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어린아이의 꿈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답을 듣고 잠깐 멍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 꿈은 실제로 이렇다. 행복한 가정. 사실 이보다 더 큰 꿈은 없다. 배가 이십 여분 달려 껌뽕플럭 마을에 도착했다. 강에 박힌 집의 기둥이 숲을 이루고 있다.    

껌뽕플럭 수상마을

  기둥 사이로 껌뽕플럭 마을의 흙길이 보인다. 이 길은 한 달 뒤 물에 잠겨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쏘포안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건기에 드러나는 마을 도로

  이 길을 따라 마을이 양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좌측의 집이 강과 붙어 있는 집이다. 우측의 집도 같은 높이로 지어졌다. 쏘포안이 전봇대 위의 흙탕물 흔적을 가리키며 작년 우기에는 이만큼 물이 찼다고 말한다. 집들이 족히 2~3km는 길게 이어졌다. 700여 가구가 산다고 하니 마을 규모도 엄청 크다. 최근 캄보디아 내무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 가구당 자녀가 평균 5명이라니까 여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이 된다. 초등학교가 2개, 중학교가 1개가 있다. 365일 물 위에서 사는 수상마을과는 달리 이곳은 전기가 들어온다. 물에 잠기지 않는 10개월은 캄보디아 여느 마을과 같다.  

  

  수상 가옥을 호기심으로 보던 때가 있었다. 캄보디아 처음 와서 그랬다. 여러 곳의 수상마을, 수상가옥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쏘포안의 집

  둘이 걷고 있는데 길가에서 축구하던 녀석들이 쏘포안에게 아는 체를 한다. 다들 한동네 친구들이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쏘포안은 무리에 끼어들어 이리저리 뛰며 신났다. 공놀이를 끝내고 기다리던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는데 제법 어른스럽다. 조금 걷다가 자기 집을 가리키며 내 소매를 끄는데 이곳에선 꽤 괜찮아 보이는 집이다. 쏘포안이 나고 자란 집이고 또 그의 자식들이 살 집이다. 옆집 할아버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마을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마을이 생긴 지는 1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전부다 크메르족이고. 17년 전 돈레삽이 엄청 불어나 지붕까지 잠긴 적이 있다고 한다. 쏘포안과 함께 하는 동행에서 나는 캄보디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쏘포안이 다니는 학교는 방학이라 썰렁했다. 몇 달 전 왔을 때 학용품을 사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행객들이 학교에 오면 학용품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온다.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라는 말과 함께 사기를 종용한다. 돈을 꺼내는 순간 어디서 왔는지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선다. 이런 모습은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이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때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아보고 싶기도 했다.   

껌뽕플럭 초등학교

  초등학교 맞은편 100여 년 전에 지었다는 사원은 규모도 꽤 크다. 마을이 크다 보니 돈레삽 지류를 따라 삶의 터전은 길게 이어져 있다. 마을을 걷는 동안 이곳 초등학교 밑에서 배가 대기하고 있다. 배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맹그로브 숲으로 향했다. 나와 쏘포안은 어느덧 친한 친구가 되었다.

“쏘포안! 무슨 공부가 제일 재밌니?”

“영어요.”

“잉글리시?”

“예스”

나는 쏘포안이 왜 영어 배우기를 좋아하는지 안다. 돈레삽 투어 배는 대부분 외국인들이기에 쏘포안 또한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안다.

  맹그로브 숲을 보기 위해 쪽배로 옮겨 탔다. 맹그로브 숲은 물고기의 산란장소, 은신처이며 먹이를 제공을 하는 유용한 숲이다. 돈레삽의 물고기는 맹그로브 숲이 고향이다. 맹그로브 나무뿌리는 물밑 10m까지 내려간다. 나무는 기이한 모양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똑같은 모양의 나무가 하나도 없다. 자유자재로 뻗어 오른 서로 다른 곡선이 하늘을 향해 춤을 춘다. 맹그로브 숲에는 많은 압사라 여신이 매일 물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맹그로브 숲

  맹그로브 숲에는 길이 있다. 쪽배를 젓는 어린 사공은 숲 사이 난 길을 따라 잘도 간다. 이곳의 사공은 모두 껌뽕플럭 마을 주민들이며 아주머니, 할머니, 아이 다양하다. 어른 남자가 없는 게 특이하다. 개인 소유인 배는 오전 오후 한 번만 다닌다고 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니 나름대로 마을에서 정한 규칙 같다. 요즘은 관광객이 더 줄어 하루 한 번으로 줄어들까 걱정이란다. 일을 마치면 배를 끌고 강가 집으로 퇴근한다. 쪽배는 영업용이자 자가용 차량인 셈이다. 집 앞의 강은 주차장이고.

맹크로브 숲의 쪽배

   물 위에 떠있는 맹그로브 숲 매표소는 휴게소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다. 돈레삽의 석양을 보러 가는 배들은 이곳에서 기다리며 시간을 맞춘다. 30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쏘포안 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다. 요즘은 한국 관광객이 거의 없고 그 자리를 중국 관광객이 채운다고 한다. 더운 날씨에 교통 시설도 좋지 않으니 캄보디아의 관광 현실은 불편한 게 많다. 하지만 여행을 삶으로 이해한다면 여행의 불편함도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껌뽕플럭은 어업과 관광이 주 수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을 전체에 큰 배가 129대, 작은 배가 640대가 있다고 하니 많기는 하다. 오가며 본 강가에는 발이 묵인 배가 무척 많았다.

  맹그로브 숲을 빠져나와 조금만 가면 거대한 호수를 만난다. 말로만 듣던 돈레삽, 바다 같다는 그 호수. 올 때마다 새롭다. 눈을 들어 저 끝을 본다. 수평선, 끝이 안 보인다. 이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레삽을 바다라고 말한다.  

석양을 기다리는 돈레삽

  호수 안으로 들어간 배는 석양을 기다리며 정박했다. 배가 정박한 곳 물의 깊이는 5m 정도 된다. 여기에서부터 물길로 14km 떨어져 서쪽으로 쫑크니어 수상마을이 있다. 그곳은 1년 내내 물 위에 떠있는 마을이다. 우기 두 달만 물에 잠기는 껌뽕플럭 마을과는 삶의 환경이 많이 다르다. 마트, 주유소, 병원, 학교 등 모든 시설이 물 위에 떠있다. 전기와 먹는 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쫑크니어 마을을 가는 길은 시엠립에서 남쪽 돈레삽 방향 13km 정도로 가깝다. 그곳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4km 정도 지류를 빠져나오면 돈레삽 호수에 이른다. 이 마을은 건기나 우기 언제나 변함없이 물 위에 늘 같은 모습이다. 작년 쫑크니어 수상마을에 갔던 기억이 새롭다.    

쫑크니어 마을로 가는 배

  껌뽕플럭 수상마을의 지류에 비해 쫑크니어 수상마을로 나가는 지류는 폭이 무척 넓다. 물줄기도 세차서 지류임에도 돈레삽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삼사십 분을 가면 광활한 돈레삽 호수를 만난다. 쫑크니어 마을은 물 위에 7개의 마을이 있다. 마을도 넓게 퍼져있고 그만큼 인구도 많아 5,800여 명이 물 위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모두 베트남 사람들이다.

        



  베트남 전쟁(1964~1975) 시기에 전쟁을 피해 이곳에 온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계속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당시 캄보디아 정부는 그들이 뭍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수상 거주를 허용했다. 지금 그들은 베트남 사람도 아니요, 캄보디아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마트도 있고, 병원도 있고, 학교도 있다. 한국 선교단체에서 세운 물 위의 교회는 규모도 꽤 크다.   

               

쫑크니어 수상마을

  물 위에 사는 쫑크니어 사람들은 당연히 고기잡이가 생업이다. 그리고 집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 일용품을 파는 작은 배가 집집마다 다니기에 웬만한 생필품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코코넛 껍질의 숯이나 나무로 조리하여 식사하고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뭍의 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다. 개도 있고, 닭이나 돼지를 키우기도 한다. 전기가 없지만 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하여 TV도 보고 선풍기도 튼다. 먹는 물은 큰 통으로 사서 먹는다. 건기에만 뭍이 되어 살던, 일 년 내내 물 위에서 살던 돈레삽을 삶의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아직도 많다. 돈레삽은 그들의 젖줄인데 갈수록 물고기가 적게 잡혀 걱정이라는 건 쫑크니어 마을이나 껌뽕플럭 마을이나 다 마찬가지다.

  작년 쫑크니어 마을에서 봤던 석양을 오늘도 볼 수 있을까? 내 곁에 앉아 있던 쏘포안이 나를 쳐다본다. 왠지 오늘은 석양을 보기 힘들 것 같다는 표정이다. 나는 행운을 기다려보자며 씽긋 웃었다. 그때 구름이 걷히고 강열한 석양이 비친다. 환호성 소리. 그리고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아름다운 석양에 대한 경외심의 침묵이다.

돈레삽의 일몰

  돈레삽의 백미는 석양이다. 돈레삽은 이렇게 매일 저녁 거대한 의식을 치른다. 돈레삽은 작은 우주다. 거대한 바다, 돈레삽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너무나 작아진다.    

껌뽕플럭 마을의 노을

  선장이 뱃머리를 돌린다. 나도 돌아가야 한다. 배도 고단했던지 돌아가는 길이 조용하다. 어둠이 깔리며 나무 기둥 위에 솟은 집집마다 하나둘 불이 켜진다. 하루를 마감하고 저녁을 준비하는 행복한 시간의 수상마을. 내 옆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배를 내리자 사방은 이미 어두워졌다. 나는 돈레삽에서 담아왔던 석양을 꺼냈다. 그러자 주변이 환해진다. 그렇게라도 나는 돈레삽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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